◇이 팬티는 어디에서 왔을까/조 베넷 지음·김수안 옮김/320쪽·1만3800원·알마
이렇게 판매되는 속옷은 어김없이 ‘중국산’이다. 중국산 제품이 낮은 가격을 무기로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팬티’라는 특정 상품에 주목했다. 뉴질랜드에 사는 그는 중국산 팬티 다섯 장 묶음을 단돈 8.59뉴질랜드달러(약 7000원)에 구입한 뒤 문득 의문을 갖게 됐다. “중국에서 생산돼 수많은 중간 상인을 거쳐 머나먼 뉴질랜드까지 왔는데, 어떻게 이 가격에 판매될 수 있을까.” 그러고는 팬티의 제조 과정을 책으로 엮겠다는 마음을 먹고 2007년 무작정 중국으로 떠났다.
저자는 팬티의 제조 및 유통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는 방식을 택했다. 자신이 팬티 한 묶음을 구입한 생필품 소매점 ‘웨어하우스’의 중국 상하이 지사부터 방문했다. 그 뒤 중국산 제품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상하이 신항구와 상하이 인근 도시 취안저우의 팬티 생산 공장, 그리고 면사(綿絲)의 주요 생산지인 우루무치의 농장과 방적공장까지 찾아갔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거리와 공원, 시장의 풍경을 보고 공장의 간부와 노동자들을 만나며 ‘제조왕국’ 중국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다.
특히 부활하는 중국 경제의 상징이 된 상하이 신항구와 어마어마한 물량을 쏟아내며 세계인의 팬티를 ‘책임지는’ 팬티 공장의 묘사가 직접 눈으로 보듯 생생하다.
“이 공장에서는 매달 400만 장이 넘는 속옷을 생산한다. 그중 대부분은 유럽으로 수출한다. 내수 판매는 없다. … 여공 150명과 남공 20여 명이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그들은 솔기를 꿰매거나 모서리 단을 처리하는 한 가지 공정만 담당했다. 공정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속옷은 바구니에 담겨 다음 공정으로 넘어갔다. 투탕카멘 가면이라도 쓴 것처럼 다들 무표정했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쓰촨 성 오지에서 왔다. 중국 전체가 고향으로 이동하는 춘절에도 이곳 젊은 노동자들은 취안저우에 머무는 일이 많다고 했다.”(7장 ‘팬티 공장을 방문하다’)
여행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쓴 만큼 이 책은 재미있고 편안하게 읽힌다. 하지만 관련 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아쉽다. 이 책을 통해 팬티로 대표되는 중국산 제품의 경제학적 의미와 비중, 국제 물류 역학 관계에서 중국 산업이 가지는 지위 등 ‘심오’한 내용을 얻고자 한다면 읽고 나서 실망할 수 있다.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만 여행하며 접했던 중국인과 중국문화를 인상비평 식으로 늘어놓는 자신감도, 저자에게 같은 ‘이방 문화권’일 우리에겐 불편하다.
그럼에도 중국산 팬티의 탄생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만으로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에서 접하는 팬티는 필경 우리가 입은 팬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목화부터 완제품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중국 노동자의 땀과 눈물, 거친 손길을 오롯이 담아낸 이 작은 헝겊제품이 지금 우리의 엉덩이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