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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국회의원들의 북한인권 입발림

입력 | 2011-06-24 20:00:00


방형남 논설위원

요즘처럼 국회의원들이 ‘북한인권’을 자주 입에 올린 적은 없다. 한나라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 7명 가운데 3명은 동아일보 설문조사에서 “6월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안을 한나라당 단독으로라도 통과시켜야 한다”고 답변했다. 북한인권에 대한 논의 자체를 거부하던 민주당에서도 의원 15명이 14일 ‘북한민생인권법안’을 발의했다.

외견상으로는 국회의원들이 2400만 북한 동포들도 인류보편의 가치인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회의 북한인권 논의 실상을 파고들면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다.

한숨 나오는 민주당 北인권법안

미국은 2004년, 일본은 200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 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북한인권법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빼면 우리가 참고할 만한 게 없다. 미국이 채택한 북한인권법은 차원이 다르다. ‘북한인권 장전(章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내용이 풍부하다. 북한인권 실태에 대한 미 정부와 의회의 조사 결과 북한인권특사 신설,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한 예산 규모, 북한 난민과 망명자 수용 정책을 상세히 담았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비하면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한나라당 북한인권법안은 초라하다. 미국보다 7년이나 늦게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려면 정교하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담아야 그나마 면목이 설 텐데 한나라당은 그럴 능력과 열의가 없어 보인다. 북한의 인권 침해 사례와 증거를 수집 기록 보존하기 위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는 작년 2월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북한인권법안을 채택하기 직전에 졸속으로 추가됐다.

민주당의 북한민생인권법안은 한숨이 절로 나오는 수준이다. 한나라당의 북한인권법안 채택을 저지하기 위해 급하게 만들어서 법안 자체가 조악하다. 핵심은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하자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 침해 자체에 대한 언급은 없이 지원 방안만 나열하고 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북한이 김정일의 절대 독재체제 아래 지속적으로 수많은 인권 학대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인권 침해 사례를 조목조목 열거했다. 북한 정권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민주당의 속성은 북한민생인권법안에서도 드러났다.

민주당이 ‘퍼주기’를 재개하자면서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북한은 신이 났다. 인권법안 채택은 선전포고라며 협박한다. 북한인권법에 의해 임명된 미국 인권특사의 평양 방문은 수용하면서 뒤늦게 인권 논의를 시작한 남한을 향해서는 섬뜩한 공갈을 퍼붓는 집단이 북한이다.

한나라당, 탈북자 배신할 건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립 속에 6월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안이 채택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은 협박 전략이 먹혀들어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의 인권 개선을 고대하는 탈북자들의 희망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김성민 부위원장은 “한나라당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북한인권법안을 발의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동안 “채택 촉구 목소리를 내달라”며 탈북자들의 지원을 요청하더니 이제 와서는 면담조차 거부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탈북단체장협의회 북한민주화위원회 회원들과 그제 민주당사에도 찾아갔으나 아무도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북한인권법안 채택이 무산되면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더는 북한인권을 거론할 자격이 없다. 특히 한나라당은 2만 명의 탈북자를 포함해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국민의 염원을 저버린 책임까지 추궁 당하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은 정녕 그런 결과를 원하는가. 6월 임시국회는 아직 일주일 남았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