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가기·특화·혁신으로 선두 밀어내… 그들만의 비법 ‘1등 기업’서 벤치마킹도
변화의 흐름을 놓친 노키아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점유율이 사실상 반토막 났다.
과거에 안주 노키아의 몰락
변화의 흐름을 놓친 노키아는 점차 휴대전화 시장의 주도권을 잃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는 간신히 1등을 유지하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은 3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2008년 40%→2011년 1분기 24.3%). 반면 같은 기간 애플은 9.1%에서 18.7%로 2배 가까이 성장했다. 국내 휴대전화 업계 관계자는 “현재 같은 추세라면 노키아가 1등에서 내려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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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등 기업에서 탈락하는 속도도 빨라지는 추세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에서 연간 탈락하는 기업은 1990년 초 20여 개에서 지금은 40여 개로 증가했다. 탈락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진 셈이다. 2001년 포춘 글로벌 500의 상위 100대 기업 중 52개 기업만이 2010년 조사에도 100대 기업으로 남았다. 불과 10년 사이에 절반가량이 왕좌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만큼 선두 수성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1등 기업의 몰락 이유로 여러 사항이 거론된다. 선두 수성을 위해 끊임없이 기술 개발 투자에 나섰지만 이것이 도리어 기업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기술 개발을 위해 수많은 비용을 쏟아부었음에도 성공을 거두는 것은 ‘백에 하나’다. 이런 불확실성에서 헤매는 동안 기존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후발 기업에 내준다. 또한 노키아의 사례에서 보듯 기존에 성공한 사업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혁신을 실행하기 쉽지 않다.
그러자 2등 기업에서 배우려는 1등 기업이 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원 조원영 수석연구원은 “선두 기업은 2등 기업의 도전을 과소평가하고 안이하게 대응하면 선두 수성에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을, 하위 기업은 2등 기업을 벤치마킹해 상위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전략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왼쪽) ‘지금은 2등이다’라는 카피로 세간에 화제가 된 대한생명 광고. (오른쪽) 애플과 삼성전자는 노키아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사진은 삼성 갤럭시S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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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이 반드시 성공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혀 대비하지 않다가 시장이 급변하는 일이 발생하면 한순간에 도태된다. 신기술에 올인하지 않더라도 시장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준비를 해나가야 폴로 전략도 성공한다.”
1등 기업과의 무리한 가격경쟁을 지양하고 고부가가치 영역에 특화하는 것도 2등 기업의 특징적인 전략이다. 1996년 코카콜라는 펩시와의 점유율 격차를 10%포인트 이상 벌리며 ‘100년 콜라전쟁’의 승리를 선언했다. 2등 기업 펩시는 ‘리인벤팅 펩시(Re-Inventing Pepsi, 펩시 재창조)’라는 모토하에 대대적인 변신에 착수했다. 제품 포지셔닝을 ‘웰빙’에 두고 경쟁에서 밀린 탄산음료의 비중을 과감히 줄였다. 그 대신 주스나 스포츠음료로 제품군을 조정하면서 프리미엄 식품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승현 연구원은 “펩시가 콜라시장을 두고 소모적인 경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쟁의 장을 창출한 것이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 식품 회사로 거듭난 펩시
코카콜라와의 장기적이고 소모적인 경쟁 탈피가 펩시콜라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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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2등 기업의 반란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압도적인 1등 기업의 위세에 밀려 혹은 3등 기업 등 후발 주자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시장에서 도태된 사례가 수없이 많다. ‘미투(Me Too, 따라잡기)’ DNA로 과연 얼마만큼 혁신할 수 있겠느냐는 비관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하지만 “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동일한 패턴으로 대응하는 것이 문제”라는 조원영 수석연구원의 지적처럼, 1등을 따라잡기 위한 2등 기업의 독특한 전략과 혁신활동은 1등 기업은 물론 후발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을, 다음이 NHN을,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를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칼을 갈고 있다. 과연 다음의 ‘역전의 명수’는 누가 될까. 2등 기업의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1등이 되기 위한 답이 있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주간동아 79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