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애’도 중요하지만… 김석동, 심판 역할 택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왼쪽)은 14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산은금융지주의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입찰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정무위에 함께 출석한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은 “우리금융 인수에 정부가 반대한다면 이를 따르겠다”며 즉각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과 강 회장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민영화 판 깨질라’ 복잡한 방정식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은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國難)이었던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에서 각각 차관과 외화자금과장으로 일하며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를 마피아에 빗댄 용어)의 끈끈한 전우애를 다진 사이다. 이렇게 돈독한 사이인데도 김 위원장이 우리금융 매각 과정에서 산은금융을 배제키로 한 것은 세간의 특혜 의혹을 불식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다. 이런 의혹은 강 회장이 3월 14일 취임하면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평소 국내 금융기관의 대형화 필요성을 역설해온 강 회장의 취임은 그것 자체로 금융시장의 경쟁구도를 뒤흔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실제로 강 회장은 기회가 날 때마다 “국내 금융시장의 영세성 때문에 한국의 경제력을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며 취임 이후 우리금융 인수를 통한 산은금융 민영화의 청사진을 그려왔다. 우리금융 인수를 통해 국내 부동의 ‘챔피언 뱅크’로 올라서고, 아시아로 진출해 ‘파이어니어 뱅크’를 추구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여기에 금융위가 추진하는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은 특혜 의혹을 확대하는 촉매제가 됐다. 금융지주사가 다른 금융지주사를 자회사로 두려면 지분을 95% 이상 확보해야 하지만 우리금융처럼 공적자금이 투입된 경우는 이를 50%로 낮추는 것이 시행령의 골자다. 금융위는 특정 후보(산은금융)를 염두에 두고 시행령을 개정하는 게 아니라고 거듭 해명했지만 금융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강 회장에게 특혜를 주는 조치로 받아들였다. 김 위원장의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발언은 우리금융 민영화의 판을 깨지 않기 위해 시행령 개정은 계속 추진하되 산은금융을 배제시킴으로써 특혜 의혹을 불식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다.
○ 우리금융-산은금융 민영화 안갯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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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산은지주와 우리지주를 갈라놓더라도 각각 최적의 민영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지를 피력했지만 금융권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우리금융 인수의 유력 후보였던 산은금융이 빠지면서 우리금융을 인수할 만한 대체 후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의 거듭된 부인에도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이 인수 후보군으로 계속 거론되고 있지만 각각 주주의 반대, 외환은행 인수 문제 등으로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산은금융 역시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외환은행, 태국 시암시티은행, 인도네시아 파닌은행, 우리금융 등에 대한 인수합병(M&A) 계획이 번번이 무산돼 독자 생존의 길을 걸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우리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 경남·광주은행 등 우리금융의 자회사를 분리 매각하는 방안이 다시 거론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