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노조들, 기존전임자 상당수 종전처럼 유지
다음 달로 지난해 7월부터 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가 시행된 지 1년이 된다. 타임오프제는 장기간에 걸친 정부, 경영계 및 노동계의 마찰 끝에 지난해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일단 각 대형노조는 정부의 전임자 가이드라인에 맞춰 노조 전임자 수를 대폭 축소했다. 하지만 이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유급 전임자 수. 상당수 대형노조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 않는 노조 전임자에게 조합비로 임금(명목상 무급 전임자)을 주면서 여전히 기존 전임자 가운데 상당수를 전임자로 유지하고 있다.
현재 노동계는 타임오프제의 근거가 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재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재개정은 있을 수 없다”는 방침이지만 정치 상황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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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는 89%(5월 말 현재)에 달하는 노조에서 타임오프제를 도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기아자동차는 234명이던 기존 전임자를 21명으로 줄였다. 한국철도공사도 64명에서 17명으로 노조 전임자 수를 줄였다. 문제는 대형노조들이 상당수 기존 전임자를 무급 전임자(조합비로 임금을 받는 전임자)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기아자동차의 경우 무급 전임자가 70명에 이른다. 이들은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대신 조합비로 임금을 받는다. 그 대신 현업에서 일하지 않고 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 기아차 노조는 이들의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조합비를 1인당 1만4200원씩 추가로 올렸다. 문제는 이 돈이 지난해 임단협에서 회사가 추가로 올려준 보전수당(1만5000원)이라는 점. 겉으로는 조합원이 내는 돈으로 임금을 받는 형식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회사가 무급 전임자의 임금을 보전해주기 위해 조합원의 조합비를 대신 내준 셈이다.
물론 법적으로 기아차의 무급 전임자 운영은 불법이 아니다. 타임오프제는 회사가 임금을 주는 유급 전임자 수만 규정했을 뿐 노조가 자체 재원으로 무급 전임자를 늘리는 것은 막지 않고 있다. 아직 최종 합의에 이르진 않았지만 최근 노동계에서는 한국GM이 임금 인상분의 거의 대부분을 무급 전임자의 임금을 위한 조합비로 활용해 전임자 수를 타임오프제 시행 이전 수준으로 회복시킬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고용부 관계자는 “노조 스스로 재원을 부담한다면 무급 전임자 수가 몇 명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단 회사와 협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무급 전임자의 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편법적인 임금 인상은 타임오프제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정부가 강력한 행정지도 없이 노사 자율만 외친다면 타임오프제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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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현재 대형노조가 자체 재원으로 운영하는 무급 전임자는 합법이다. 하지만 상황이 간단하지만은 않다. 고용부는 현재의 무급 전임자를 연착륙 과정에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10∼20년 현장을 떠나 노동운동을 했던 전임자들이 일시에 현업에 복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 그 대신 유급 전임자 수가 정해져 있고 노조 재원으로 임금을 충당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무급 전임자가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연착륙론’이다.
이런 판단은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대응 방법이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무급 전임자들이 노동운동의 주요 세력이기 때문. 따라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필사적으로 노조법 재개정에 매달리고 있다. 노조법 재개정을 통해 타임오프제를 무력화해 원상회복시키겠다는 의미다. 양대 노총이 올 초 노조법 재개정에 합의하고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조법 재개정 투쟁 선포식을 연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내년 국회의원선거,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원칙을 내세워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주목받는 현대차의 노사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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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노조 전임자는 현재 234명이지만 타임오프제를 적용받으면 24명으로 줄여야 한다. 현대차 노조는 나머지 210명도 무급 전임자로 유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타임오프제는 지난해 7월 시행됐지만 임단협 기간이 남은 회사는 기존 임단협 기간이 끝나는 시점까지 기존 전임자를 유지할 수 있다. 현대차 노사는 4월부터 타임오프제 관련 교섭을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해 8일 시작된 임단협에서 이를 다시 논의하고 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