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녕 논설위원.
박 전 대표는 쉽게 대할 수 있는 정치인이 분명 아니다. 좋게 보면 카리스마가 넘친다. 카리스마는 대중에게 신뢰를 주지만, 독선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과거 한나라당 총재로 있을 때도 그랬다. 한나라당 후보로 두 번 대선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그가 2007년 다시 무소속으로 대선에 나서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기존의 이미지 탈색이었다. 첫 선거대책회의 때 점퍼 차림으로 책상 위에 올라가 “앞으로는 나를 총재라고 부르지 말라”고 말해 뭇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의 변신은 너무 늦었다.
기자들조차 박 전 대표 대하기가 쉽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은 오죽하겠나 싶다. 측근 의원들 중엔 박 전 대표 근처만 가도 주눅이 든다는 사람이 있다. 측근 의원이라도 박 전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비서를 통해야 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면 박 전 대표가 콜백(callback)하는 식으로 연락을 취한다고 한다. 만나기는 더욱 쉽지 않다. 측근 의원이라도 속마음을 나눌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데, 듣기 싫은 얘기를 어떻게 건네겠는가. 누군가가 측근 의원에게 박 전 대표에 관한 고언(苦言)을 전하면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고 입을 막거나 “나는 못 전하니 당신이 직접 해줄 수 없겠느냐”고 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적지 않은 국민은 이런 리더십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장래를 개척하는 데 걸맞은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의 큰 자산이다. 그럼에도 당내에서는 그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꽤 많다. 과거 천막당사 시절의 자기희생적인 모습보다는 ‘부자 몸조심’하듯 지나치게 자기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정치 상황도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여당보다는 야당 후보를 찍겠다는 국민이 더 많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의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도 계속 통할지 미지수다. 작년 6·2지방선거 때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서 자신이 적극 밀었던 한나라당 군수 후보가 무소속 후보한테 패한 것이 우연일까.
박 전 대표가 꿈을 이루려면 더 늦기 전에 자기변신부터 꾀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자신의 주위에 둘러친 장막부터 걷어내야 하고 비판에 익숙해져야 한다. 비판을 견뎌내는 내공(內功)과 맷집이 약하면 장거리를 뛰기 어렵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