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서강대 교수 경제학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부도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 금융의 쌍두마차인 IMF와 월가의 위상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월가의 비도덕성이 집중 포화를 맞고 IMF의 무용론까지 대두됐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그런데 2008년 위기 극복에 앞장선 것은 미국도 유럽도 아닌, 연 6∼10%대의 놀라운 성장으로 세계 경제를 빠른 시간에 제자리에 올려놓은 신흥공업국이었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25.8%), 유럽연합(27.9%)보다 신흥개도국(29.5%)의 비중이 더 커졌고, 동아시아 3국의 외환보유액은 무려 5조3000억 달러를 넘어 전 세계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세계 무역뿐만 아니라 세계금융에서도 중심축이 서구가 아닌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3국으로 옮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와중에 IMF 총재자리를 놓고 유럽과 신흥공업국이 치열한 물밑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유럽 총재론을 고수하는 유럽연합(EU)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을 대표 주자로 밀고 인도, 멕시코, 브라질, 터키 등도 후보자를 냈다. 물론 한국의 후보자도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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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IMF 최대 지분국인 미국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겠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관성적으로 유럽을 지지하기에는 미국의 입장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뭔가 IMF를 획기적으로 개혁해야겠는데 기득권에 발목이 잡힌 유럽 출신 총재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워싱턴의 답답한 심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대외정책에 대한 시그널을 보낼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싱크탱크 중 하나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미묘한 움직임이다. 이곳에서 유럽 총재론에 대한 부정적인 글들이 나오고 있다.
만약 비유럽권에서 총재가 나온다면 한국 중국 일본 3국 중에서 나와야 한다. 신흥경제권이라고 다 같을 수는 없다. 세계 경제에 제일 많이 기여하는 동아시아 신흥경제권이 가장 대표성이 있다. 일본은 후보를 내세울 처지가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중국은? 나설 만하지만 요즘 너무 뜨다가 ‘화평굴기(和平굴起)’를 내세워 몸을 낮추는 베이징은 득보다 역풍으로 인한 실이 더 많다고 판단할 것 같다.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시카고대 라잔 교수는 차기 IMF 총재는 정치인 출신은 안 되며 뛰어난 경제학자로서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테크노크라트가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일부 신흥경제권 출신 후보자들이 탈락한다. 물론 한국은 이런 후보자를 낼 수 있다.
정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연임과 IMF 총재직 도전이 맞물리는 게 아닌가 하고 주춤해서는 안 된다. 국제정치 외교를 다루는 유엔 사무총장직과 국제금융을 다루는 IMF 총재직은 별개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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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서강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