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전상국 지음/292쪽·1만1000원·민음사
소설집 속 표제작인 중편 ‘남이섬’은 그러나 시끌벅적한 남이섬의 현재에 주된 시선을 두지 않는다. 6·25전쟁 당시 남이섬과 주변 마을 사람들의 좌우대립, 실제와 환영,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남이섬의 뒷얘기를 끄집어낸다. 씨줄과 날줄처럼 장면들을 농익게 변환시키며 풀어내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일제강점기 후 남이섬은 집이 단 세 채 있는, 무인도에 가까운 곳이었다. 이런 한적한 섬 주변에도 전쟁의 피바람이 불어왔다. 빙하리 지역 반공 산악대는 인민군 패잔병 수십 명을 때려잡고, 인민군은 다시 산악대들을 잡아 중국섬(현 자라섬)에서 총살한다.
액자 형식으로 프리랜서 작가가 남이섬에 얽힌 얘기들을 탐방하고, 그 과정에서 미스터리와 멜로, 환상을 버무린 작품은 어느 선까지 픽션인지 모를 정도로 모호하기에, 매력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다”라는 이상호의 말. 그리고 프리랜서 작가가 어느 날 남이섬에서 긴 머리의 벌거벗은 여자와 그를 따르는 두 남성(김덕만과 이상호)을 보는 장면이 긴 여운을 남긴다.
또 다른 중편 ‘지뢰밭’ 또한 6·25전쟁 당시와 현재를 오가며 전쟁의 처참한 피해를 조명한다. 한 은퇴한 교감이 자신의 유년기에 6·25전쟁을 겪었던 동오골 서낭당에서 국군 유해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한다. 시점은 마을 사람들이 좌우로 갈려 총과 칼을 겨누던 극심한 혼란기로 돌아가고, 당시 마을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 처참한 동족살인의 모습을 다큐처럼 그려낸다.
소설집 ‘남이섬’을 낸 소설가 전상국 씨. 표제작인 중편 ‘남이섬’은 관광지로 변한 남이섬이 품고 있는 6·25전쟁의 상흔과 당시 민초들의 아픔을 그려냈다. 민음사 제공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전상국 씨는 ‘아베의 가족’ 등 분단의 아픔을 그린 작품들로 주목받았고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받았다. 6년 만에 소설집을 낸 저자는 “두 편의 중편을 통해 늦게나마 내 본래의 관심사 언저리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것만으로도 큰 얻음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