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은 중국을 통일한 뒤 원나라를 세웠으나 동생 카사르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카사르가 이끄는 호르친 부(部)는 원래 그들이 살던 몽골 초원에 머물러야 했다. 카사르의 후예들은 후금(나중에 청)이 일어나자 결혼 동맹을 맺었다. 1636년 일찌감치 청에 복속됐고 1947년 중국의 소수민족 몽골족으로 네이멍구 자치구를 부여받았다. 내몽고, 외몽고는 청나라와 중국의 관점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인과 몽골인의 반목은 역사적 뿌리가 깊다. 13세기 몽골 고원에서 떨쳐 일어난 칭기즈칸이 수백만 명의 중국인을 죽이고 대제국을 세웠을 때부터 악연은 시작됐다. 칭기즈칸은 중국인들을 북쪽 끝 벌판으로 내쫓으려다가 “그냥 두면 이들에게 세금을 거둘 수 있다”는 조언에 살려두었다고 한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때 네이멍구 지역의 일부를 헤이룽장 성, 지린 성, 랴오닝 성에 떼어주었다. 외몽고만이라도 독립을 이룬 것은 소련 지원 덕분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은 소련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외몽고 독립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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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