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계부채 규모가 처음으로 8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3월말 현재 금융회사의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외상구매를 합한 가계신용 잔액은 801조 원으로 작년 말보다 6조 원 늘었습니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한국의 은행산업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요인의 하나로 가계부채 증가를 거론했습니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가계신용은 가계부채의 대표적 지표입니다. 2005년 521조 원, 2007년 630조 원, 2009년 말 733조 원으로 매년 급증했습니다. 작년 4분기의 전분기 대비 증가액이 25조 원이었던 점과 비교할 때 올 들어 증가속도는 둔화됐지만 사상 첫 800조 원 돌파의 무게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남긴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빚에 대해 의미 있는 경구를 남겼습니다. 그는 "빚이 아무리 묘한 재간을 부리더라도 자신이 낸 손실을 물어내지 않을 수는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영국 저널리스트 윌리엄 리스모그는 "역사적으로 빚을 자꾸 져 가며 이를 갚지 않으려 한 시도는 모두 눈물로 종말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누구도 '빚의 복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정부는 가계부채 급증을 막기 위해 올해 4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부활했습니다. 선제적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조치였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입니다. 금융회사들이 무분별하게 가계대출을 늘리거나 카드 마케팅 경쟁에 나서는 것을 더 적극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 개인과 가정에서도 빚을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등 '자기 책임'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동아논평이었습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