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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조달시장’ 한국이 안보인다

입력 | 2011-05-24 03:00:00

年140억달러 규모… 절차 까다로워 0.34% 점유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뿌리내리는 유엔평화유지군은 한국의 중소기업 ‘캬라반이에스’가 만든 창고에 비행기를 보관한다. 이 회사가 창고 등 조립식 건물을 유엔에 공급한 실적은 2008년 6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2010년 초 2100만 달러로 3배 넘게 뛰었다.

9년 전 책상 3개를 놓고 시작한 회사는 어느덧 종업원 200명을 갖춘 건실한 업체로 성장했다. 이 회사의 권혁종 대표이사는 “유엔 조달시장을 뚫고 보니 미국과 일본 정부의 조달시장도 수월하게 진출할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조립식 건물은 지난해 말부터 일본 방위성의 물품 보관고가 됐다가 올해 3월부터는 아이티 난민의 안락한 숙소가 됐다.

유엔평화유지군 활동 등 유엔의 각종 사업에 물품을 공급하는 유엔 조달시장의 규모는 한 해 140억 달러(약 15조200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진출에 소극적이다. 23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2005년 0.28%였던 한국 유엔 조달시장 점유율은 2006년 0.35%, 2007년 0.51%로 오르는가 싶더니 2008년 0.24%, 2009년 0.34%로 다시 떨어졌다.

한국의 유엔 조달시장 점유율 수준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유엔 예산의 상당부분을 부담하고 있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는 대조적이다. 2010∼2012년 우리나라의 유엔 예산분담률은 세계 11위인 2.26%에 달한다. 유엔조달본부에 등록된 기업도 59곳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숨겨진 ‘블루 오션’인 유엔 조달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윤이 20% 안팎에 달하고 계약 기간이 최장 5년 6개월이나 되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 기반이 된다는 설명이다. 알고 보면 진출 분야도 음식, 의약품, 의료장비, 차량, 통신장비, 주택, 상수도 등 다양하다.

영어로 작성해야 하는 까다로운 등록 절차나 비교적 느린 진행 속도 때문에 기업들의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길이 열리면 또 다른 수출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유엔 조달시장에 진출했다는 공신력만으로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다른 국제기구는 물론이고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 정부의 조달시장에 진입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시형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은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거대한 유럽 조달시장이 열리는 만큼 국내 기업도 유엔 조달시장에 더욱 적극적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