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 오케이.
이소라 6집 수록곡 ‘바람이 분다’의 노랫말.
헤어지는 연인들은 그 시점부터, 분리된 두 개의 우주를 걷는다. 미치오 가쿠가 ‘평행우주’에 썼듯 “자신의 우주가 유일한 현실이라 믿고, 다른 우주를 허구의 세계로 간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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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연인과의 재회는 그러므로, 당연한 오해를 전제한 평행우주와의 조우다.
‘백 투더 퓨처 2’(1989년)에서 악당 비프의 계략에 의해 낯설게 이지러진 현실로 넘어와 버린 마티에게 브라운 박사가 설명한다. “우리에게 이상해 보이는 지금의 상황. 다른 모든 이에겐 그저 당연한 현실이야.”
현실과 미래는 과거를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의지가 개입한 현실의 의식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바꾼다. 기억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 위에 덮는 의도적 침전물로 인해, 달라 보이게 된다. 분화 전 우주의 흔적은 그렇게 기억의 주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제각각 이지러져 간다.
사랑이란 게 원래, 공평하게 주고받는 거래가 아니다. 머리로는 누구나 그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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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씨의 그림책 ‘혜성을 닮은 방’에 ‘소각 위성’이라는 공간이 등장한다.
둘이 맞잡고 있던 어떤 것을 어느 한쪽이 놓아버린다. “혼자 유지하긴 불가능. 죽어라 노력해도 얼마 못 버틴다. 결국 땅에 떨어지면, 산산조각.”
영구삭제를 위해 응당 소각로로 들어가야 할 그 산산조각의 일부를 그런데 다른 한쪽이, 죽어라 붙들고 놓지 않는다면. 웃자라되 아무 쓸데없는, 보기 흉한, 기괴한 무언가가 발생하는 걸까. 영웅으로 죽지 못한 채 꾸역꾸역 연명하다 보면 결국 악당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것처럼(‘다크 나이트’). 칼 맞은 시저와 사약 받은 한니발. 기대 이상 오래 살아남는 것은 대개 골칫덩이로 귀결된다.
처치곤란 패악으로 일그러지기 전에 기억을 포맷하려는 욕망은, 여기서 자연스러워진다. 찰리 카우프만이 쓰고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이터널 선샤인’(2004년). 영화 중반까지 이들은 ‘어웨이 프롬 허’나 ‘내일의 기억’의 신파와는 다른 흐름으로, 기억과 사랑의 함수관계에 대한 나름의 이성적 접근을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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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싫어할 이유. 못 찾겠어.”
“곧 보일 거야. 점점 내 단점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될 걸.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싫증내며 속았다고 생각하겠지. 지난번에, 그랬던 것처럼.”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괜찮아.”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괜찮아.”
괜찮다. 아마 괜찮은 걸 거다.
사랑조차 현명했다면, 인간. 일찌감치 멸종했을 것이므로.
krag06@gmail.com
krag 동아일보 기자. 조각가 음악가 의사를 꿈꾸다가 뜬금없이 건축을 공부한 뒤 글 쓰며 밥 벌어 살고 있다. 삶은 홀로 무자맥질. 취미는 가사노동. 음악과 영화 덕에 그래도 가끔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