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상 中어선 불법조업 단속현장 동행 취재
“꼼짝마” 서해 불법조업 中어선 단속현장 7일 오후 인천해경 3005함 단속대원들이 인천 옹진군 대청도 남서쪽에서 우리 해역을 침범한 중국 어선을 세운 뒤 불법으로 잡은 어획물을 확인하고 있다. 이날 나포된 중국 어선 랴오후위(遼葫漁) 35556호에는 까나리와 조기 등 8t이 넘는 수산물이 실려 있었다. 대청도 3005함=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출동 준비!”
해무가 짙게 낀 7일 오후 우리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선원들이 인천해경 단속대원들에게 제압당해 갑판에 서 있다. 중국 어선 뒤로 우리 측 단속대원들이 타고 온 고속단정이 보인다. 대청도 3005함=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모든 단속대원은 비상 대기하라.”
최근 한 달 동안만 5척의 중국어선을 나포한 이병훈 함장(55·경정)이 재빨리 마이크를 잡고 대기명령을 내렸다. 일부 대원은 인천해경 상황실에 긴급 상황을 보고했고, 나머지는 레이더 모니터를 통해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을 채증했다.
이 함장은 즉각 강갑성 단속반장(47·경사) 등과 단속 방법에 대한 대책회의를 가졌다. 30여 척을 모두 나포할 수는 없는 상황. 안개가 많이 끼어 자칫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이 함장은 결국 논의 끝에 시속 8km 속도로 그물을 끌면서 북상하고 있는 쌍끌이 어선 2척을 타깃으로 정했다. 이 어선은 경비함에서 동남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지점에 있었으며 우리 해역을 5.5마일(약 10km) 정도 침범한 상태였다.
○ “나포하라!”
이 함장의 지시에 단속대원 16명이 단정(고속보트) 2척에 나눠 탔다. 대원들은 고무탄이 발사되는 6연발 유탄발사기와 전자충격기, 실탄이 장전된 권총 등으로 중무장했다. 또 머리에는 채증을 위해 카메라가 달린 헬멧을 썼다.
출동 35분 만에 단정을 타고 78t급 쌍끌이 어선인 랴오후위(遼葫漁) 35556호에 접근한 대원들은 스피커로 정선명령을 내렸지만 중국어선은 이에 불응했다. 100m 정도 떨어져 있던 또 다른 중국어선은 황급히 그물을 걷어 올리고 중국 해역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펑 펑.’ ‘콰쾅.’
결국 대원들은 랴오후위 35556호에 폭음탄과 고무탄을 발사했다. 대원들은 갑판에 있던 중국 선원들이 놀라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 날렵하게 배 위로 올라탔다.
“조타실! 조타실을 장악해!” “좌현으로! 좌현으로 돌아!”
배 위에 올라선 대원들은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다. 일부는 저항하려는 중국 선원을 제압했고, 또 일부는 배를 정지시키기 위해 조타실로 올라갔다. 그러나 최근 중국 선원의 폭력 저항에 대해 해경이 강력 대응키로 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인지 다행히 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날 작전은 고속보트가 출동한 지 42분 만에 신속히 끝났다. 중국어선의 뱃머리엔 불법어로를 하다 붙잡힌 중국 어부 8명이 손을 머리에 올린 채 있었다. 나포된 중국어선이 이날 하루 잡은 어류는 까나리와 조기 등 20kg짜리 400여 상자(8t) 분량이 넘었다. 나포된 중국어선은 인천해경의 또 다른 경비함에 넘겨져 인천 해경부두로 이동한 뒤 불법조업 경위를 조사받게 된다. 또 5000만 원 안팎의 담보금도 부과된다.
○ 이날 하루만 400여 척이 조업
인천해경에 따르면 이날 서해5도 NLL과 EEZ 부근에는 중국어선 400여 척이 조업 중이었다. 이들은 한국 측 해역에서 불법어로를 하다 해경이 출동하면 재빨리 도망치는 수법을 쓴다. 특히 이들은 바다 밑바닥까지 훑어 어류를 닥치는 대로 잡는 쌍끌이 조업을 일삼기 때문에 중국어선이 한 번 다녀간 바다는 거의 고기 씨가 마를 지경. 연평도 어민 최율 씨(54)는 “중국어선이 다녀간 바다에서는 상당 기간 아예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경은 성어기에는 모든 경비함을 동원해 비상근무에 들어가지만 중국어선이 워낙 많이 몰려 모두 단속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해경이 올해 들어 4월까지 나포한 중국어선은 172척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0척보다 크게 늘었다. 이성형 인천해경 서장은 “중국어선의 폭력적 저항이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단속 과정에서 양측 모두 부상자가 나올 수 있어 무리한 단속은 삼가고 있다”고 밝혔다.
▼ 단속 지휘 이병훈 함장 “中 어선 저항 흉포화… 인력-장비 보강 절실” ▼
외항선을 타다가 1984년 해경에 들어온 이병훈 3005함장(사진)은 요즘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성어기를 맞아 중국 어선들이 대규모로 선단을 이뤄 배타적경제수역(EEZ)과 북방한계선(NLL)을 수시로 넘나들며 우리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기 때문이다. 3월부터 3005함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해경에서 ‘불법어로 중국어선 잡는 도사’로 통한다. 2008년부터 3년 동안 제주해경에서 경비함을 타며 우리 해역을 침범해 불법 조업한 중국어선을 무려 200여 척을 나포했을 정도다.
그는 3005함에서 젊은 단속대원들이 중국어선을 나포하기 위해 출동할 때 무엇보다 신변의 안전을 당부한다. 이 때문에 중국 선원들이 흉기를 휘두르며 극렬하게 저항할 경우 혈기만 앞세워 무리하게 제압하려 하지 말고 경비함에 인력 지원을 요청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어선 단속 과정에서는 경찰관 14명이 다쳤고 해마다 10명이 넘는 부상자가 나오고 있다. 그는 “단속과정에서 중국선원이 보여주는 폭력은 단순한 저항을 넘어 해적에 가깝다”며 “쇠파이프와 도끼는 예사고 심지어 대검까지 휘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어선이 선단을 이뤄 조업하는 경우가 많아 불법조업 선박을 모두 나포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단속 인력을 더욱 늘리고 첨단 장비를 더 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청도 3005함=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