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영국왕 엘리자베스’대본★★★★ 의상★★★★ 연출★★★☆ 연기★★★☆
강철 같은 카리스마 아래 상처받기 쉬운 여성 성을 감춘 엘리자베스 여왕 역 김현아 씨. 화기획집단 문화아이콘 제공
극단 뮈토스의 ‘영국왕 엘리자베스’(오경숙 번역·연출)는 그 여왕이 말년에 사랑했던 연하남 에식스 백작을 처형하기 전날 밤 이야기를 3시간에 걸쳐 담아냈다. 캐나다 극작가 티머시 핀들리는 여기서 여왕의 재위기간 중 가장 빛나는 보석과 같은 존재였던 셰익스피어(1564∼1616)를 등장시킨다. 여왕(김현아)이 셰익스피어(최규하)의 극단 숙소로 찾아와 배우들과 밤을 보내며 사랑과 정치에 대해 밤새 논쟁을 펼친다.
논쟁의 축은 왕위를 위해 여성성을 포기한 여왕(김현아)과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장배우로 살아가는 네드 로언스크로프트(박기덕) 사이에서 빚어진다. 당시 연극에선 여자 역할은 여장남자배우들 몫이었다. 네드는 단순한 여장배우가 아니다. 남자를 사랑하다 매독에 걸린 동성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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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배우의 대결을 그린다는 점에서, 또 연극을 왕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일종의 사이코드라마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영국판 ‘왕의 남자’라고 할 만하다. 셰익스피어 작품과 영국 역사에 정통하지 않은 관객에겐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2막에선 강렬한 흡인력을 보여준다. 사실성 높은 의상과 조명도 한몫을 했지만 특히 엘리자베스 역을 소화한 김현아 씨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볼만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3만 원. 5월 1일까지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1666-57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