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권희 논설위원
하지만 정부의 할 일은 이제부터다.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의 보고서에는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단기 중기 대책이 여럿 들어 있다. 사실 최 장관은 새삼스럽게 TF까지 가동시킬 필요가 없었다. 국내외 사례를 분석해 만든 정책자료가 이미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TF 보고서에 최 장관의 주특기인 압박전술로 유가를 내리자는 표현은 단 한 구절도 없다. TF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생산원가와 적정 마진을 직접 산출하기는 어렵다’며 시장구조의 복잡성을 인정했다. 최 장관처럼 “계산기를 두드려 기름값 원가 계산을 해보겠다”고 큰소리치지 않았다. 보고서는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 공개를 추진하기에 앞서 영업비밀 침해 여부 등 법률 검토를 하라고 돼 있다. “과점시장에는 정부가 개입해도 된다”고 했던 최 장관은 관련 법령 검토나 제대로 한 것인지 모르겠다.
석유제품은 차별화가 쉽지 않지만 소비자들은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김형건 에너지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휘발유 액화석유가스(LPG) 등 수송용 석유제품의 가격탄력성이 높아 담합이 없다면 과점시장에서도 가격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TF 보고서는 석유수입업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처음 나온 방안은 물론 아니다. 수입업자가 공급하는 경질유의 비중은 2002년 9.2%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0.5%로 추락했다. 주변국보다 높은 수준인 국내 품질기준에 맞춰 석유를 수입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수입 판매 실적이 있는 회사는 8개뿐으로 시장에서 있으나마나한 존재다. 휘발유 수입은 2006년부터 중단된 상태다.
수입 석유가 4대 정유업체의 가격 결정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려면 종합상사나 대형유통업체가 수입 판매에 나서야 한다. 유통업체의 경쟁이 ‘통 큰 석유(롯데)’ ‘이마트 석유’ ‘홈플러스 석유’로 번져도 이상할 게 없다. 정부는 석유수입업의 규제를 더 과감하게 풀고 품질과 안전, 가격투명성만 감시하면 된다.
최 장관이 겨냥했던 유가 결정의 비대칭성 등 여러 타깃이 대부분 빗나갔다. 그는 업계에 ‘성의 표시’를 사정하다시피 해 석 달간 가격 할인 카드를 받아냈다. 어설프게 시작해 어설프게 끝나간다. 휘발유 L당 90원에 면죄부를 내주고 과점업계의 오랜 문제점을 눈감아 준다면 정부에 시장감독 기능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유가 인하 3개월 작전은 승패를 따질 필요도 없다. 최 장관 앞에는 석유시장 경쟁촉진이라는 진짜 숙제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