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건 땅 만이 아니었다
지진으로 파괴된 리스본을 담아낸 판화.
가톨릭 최고의 축일인 만성절(萬聖節·All Saints' Day)을 맞아 수만 명의 시민이 성당에 모여 있었다. 미사가 시작된 직후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3분 간격으로 일어난 두 번의 지진과 세 차례의 지진해일, 대화재로 리스본 시내의 85%가 파괴됐다. 리스본 시민 27만 명 가운데 3만∼7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사람들은 울부짖었다. 신은 왜 모든 성인을 기리는 축일, 기도하는 시간에 리스본에 그 같은 재앙을 내렸는가. 성당과 수도원 수로 볼 때 리스본은 지상에서 가장 신성한 도시라는데….
광고 로드중
당대 최고의 문필가 볼테르는 낙관주의 철학을 조롱하는 시 ‘리스본 재앙에 대하여’를 발표했다. 이 시의 부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옳다는 원칙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는 “모든 불행의 시작이 신의 권위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이라면 나는 신을 믿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운명의 날: 유럽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의 저자 니콜라스 시라디는 리스본 대지진은 단순한 재앙이 아니라, 하나의 혁명이었다고 주장했다. “재앙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었다. 건전한 의심과 이성이 독단적인 종교 교리를 대신했으며, 하나님의 섭리로 주입된 체념적 삶은 인간의 주체적 삶에 자리를 내주었다.”
장 자크 루소는 “지진의 피해는 자연이 인간에게 준 재앙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자연을 거슬러 도시를 건설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앙의 원인을 사회과학적 관점으로 규명하는 최초의 글을 썼다. 이마누엘 칸트도 지진을 도덕적 타락에 대한 신의 응징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3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런 새로운 생각 속에서 다음 지진에 대비하기 위한 조사가 실시됐고, 지진학이란 학문분야가 탄생했다. 또 국제 재난구호란 개념이 만들어졌으며, 재난을 극복하는 주체가 교회에서 국가로 바뀌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은 여러모로 2011년 일본 대지진을 비추는 ‘역사의 거울’이다. 지진과 쓰나미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누출은 인재(人災)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드러나는 건 전자보다 후자다. 인간이 불러온 재앙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일본 정치인의 말대로 ‘신만이 안다’.
광고 로드중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제 인류는 계몽주의가 주입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는 문명사적 기로에 서있다. 특히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생명권으로 연결돼 있다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일본의 원전에서 흘러나온 방사능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nowtime21@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