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정치부 기자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이 1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에 기권해 부결시킨 뒤 당 안팎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트위터로 홍 의원을 격려했다는 소식에는 “한나라당 소장파의 적통을 계승했다”는 수군거림도 나온다. 이런 얘기가 나도는 것은 홍 의원의 기권과 그 전후 행보가 ‘선배’ 소장파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 16대 국회 들어 본격 등장한 한나라당 소장파는 남경필 원희룡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끌던 ‘미래연대’가 주축이었다. 이른바 ‘오렌지’로 불린 이들은 당내에서 세대교체를 주장하며 정치자금법 개정을 이끌어내기도 했으나, 2003년 당 대표 경선을 놓고 최병렬파와 서청원파로 갈리며 복잡한 당내 파워게임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서울시장 당내경선에선 원희룡 의원이 오 시장을 ‘오렌지 시장’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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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의원은 15일 한-EU FTA 비준동의안에 기권한 뒤 기자회견에서 “물리적 충돌에 반대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외통위원도 아닌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유기준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의 팔을 잡은 것은 있어도 여당 측이 물리적으로 강행처리 수단을 동원한 것은 없다. 홍 의원은 “한-EU FTA에 찬성한다”지만 자신의 기권으로 지연 가능성이 높아진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은 밝히지 않았다.
홍 의원은 나름으론 소신을 피력한 것이겠지만 국익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의 행동이 혹시 치열한 고민의 결과가 아니라 선배 소장파들과 같은 ‘보여주기식 쇼’와 다르지 않다면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승헌 정치부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