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연구기관이 세계적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낸 논문을 모두 합해도 일본 도쿄대 한 곳에 못 미친다. 아시아권에서는 도쿄대가 1위에 올랐고 서울대는 10위, KAIST 11위였다. 개별 저자의 부분적 참여도까지 감안한 점수는 도쿄대가 34.33점, 서울대 4.87점, KAIST는 4.59점이었다. 한국의 대학, 공공연구기관, 기업연구소 등 모든 연구기관을 합친 점수도 24.57점으로 도쿄대 하나에 못 미쳤다.
도쿄대는 세계 전체에선 6위였다. 72.72점으로 1위인 미국 하버드대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다. 한국 과학교육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짐작할 만하다. KAIST의 서남표 총장이 경쟁 상대로 정한 미국 MIT는 5위로 도쿄대보다 한 단계 앞서 있다. KAIST가 MIT를 따라잡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교수와 학생의 분발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한국은 국토가 작고 자연자원도 별로 없다. 내세울 만한 것은 인적자원뿐이다. 한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빈국에서 경제규모 13위의 국가로 성장한 것은 뜨거운 교육열과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10년 후 이 나라를 먹여 살릴 힘이 교육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인적 경쟁력 말고 다른 데서 나오리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지난해 가까스로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만 달러에 턱걸이한 한국이 3만 달러를 달성하는 것도 과학기술 강국이 돼야 가능하다.
광고 로드중
학생들은 최근 총회에서 ‘서남표식 개혁’을 실패로 규정한 안건을 부결시켰다. 한국 최고의 과학도들다운 성숙한 대응이다. 어제 열린 이사회도 서 총장의 거취와 그의 개혁조치에 대한 결정을 유보했다. 개혁의 부작용을 줄일 지혜는 필요하지만 개혁 자체를 포기하면 ‘세계적인 대학’으로 가는 길에서 멀어질 뿐이다.
KAIST는 거의 100% 국민 세금과 기부금으로 유지되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형태의 대학이다. 이런 KAIST조차 세계 유수 대학들과 어깨를 겨룰 수 없다면 우리 과학기술의 장래와 국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서울대 등 다른 대학들도 한국의 네이처 논문 실적을 보면서 각성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