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DB.
1993년 세르비아계가 알바니아계를 박해하기 시작하자 그는 다니던 대학과 고향을 떠나 무작정 독일로 피신했다. 독일에서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1년 6개월 동안 막노동을 하던 그는 겨우 입학한 어학원에서 한국인 여학생을 만났다. 그녀가 만들어 준 음식, 들려준 음악은 그를 한국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에게 선물받은 한국어 여행사전으로 틈틈이 한국어를 익혔고 영화 '편지'와 '넘버3'를 보며 한국문화를 접했다.
그는 독일 파데르보른 대학에 입학한 뒤 1998년 6개월간 부산 동의대에, 2001년 한 해 동안 삼척대에 교환학생으로 머물렀다. 당시 삼척대에서 열린 미래에너지 국제심포지엄에서 만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박영옥 박사는 평생의 은사(恩師)가 됐다. 박 박사는 그에게 어학연수를 마친 뒤 연구원으로 와 6개월간 실습을 하라고 권했다. 이후 독일로 돌아가 석사학위를 받은 그에게 "한국으로 오라"고 먼저 제의한 것도 박 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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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솔리 씨는 "돼지고기를 못 먹어 삼겹살 회식 자리가 괴롭다"고 말하는 이슬람교도지만 틈날 때마다 산사(山寺)를 찾아 사진을 찍는다. "산과 어우러진 한국의 사찰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했다. 명절에는 한국인 친구의 고향에 내려가 함께 송편을 빚고 가야금 소리가 좋아 1년째 가야금 연주를 배우고 있다.
최창봉기자 ceric@donga.com
대전=김진기자 holyj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