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락 사회부 기자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경찰은 자못 비장했다. 7일 오전 10시 울산지방경찰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서상완 수사2계장(경정)은 제약사에서 총 6100만 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공중보건의 3명을 입건한 수사 결과와 함께 전국의 의사 1000여 명이 국내외 15개 제약사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도 발표했다. 그러면서 “공무원 신분인 공중보건의와 국립병원 의사에게는 뇌물수수 혐의를, 종합병원 전문의에게는 배임수재 혐의를 적용해 처벌하겠다”며 강한 수사 의지를 드러냈다. 리베이트 흐름도와 입출금 내용도 취재진에 공개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부터 리베이트 적발 시 의사와 제약업체 양쪽 모두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에 들어간 이후 첫 수사여서 전국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경찰의 강력한 수사 의지는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날이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수사 방법도 특혜 논란이 일 정도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경찰은 소환 통보를 한 의사들이 수술과 학회 참석 등을 이유로 출석을 미루자 e메일로 조사했다. 또 변호사가 대신 답변서를 갖고 와도 받아주고 일과시간 이후에 출석하도록 배려했다. 조사 과정에서 언론의 접근도 철저히 차단했다. 심지어 경찰은 당일 소환한 의사가 몇 명인지도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제약사가 의사에게 건네는 리베이트는 결국엔 약값에 반영돼 환자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사회적 약자인 돈 없는 환자를 울리고 일반 환자들에게도 ‘바가지를 씌우는’ 범죄인 셈이다. 경찰은 이제부터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이번 리베이트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에게, 나아가 힘 있는 자에게 유독 약한 경찰’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울산에서
정재락 사회부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