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직원 통해 기록 유출… 공무원 비리사건 수사 방해검찰 “불법 관행 끊기” 강수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순천지원의 구속영장 기각률은 22.1%(95건 중 74건 발부, 21건 기각)로 전국 평균 27.2%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사이 이 지역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변호사 A 씨는 자신이 수년 전 판사로 근무할 때 부하로 데리고 있던 법원 직원 B 씨(8급)에게 사건 의뢰인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첨부된 검찰 수사기록을 복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B 씨는 옛 상사였던 A 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영장에 첨부돼 있던 기록의 일부를 복사해서 넘겨줬다. A 씨가 건네받은 기록에는 ‘지방교육자치단체 고위공무원 C 씨가 지역기업 P사 대표 D 씨로부터 선거자금으로 수억 원을 받았다’는 범죄첩보 보고서 등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 기밀 빼낸 변호사 ‘청산가리 막걸리’ 무죄 받아내 ▼
횡령 혐의 등으로 먼저 구속된 P사 임원 E 씨가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며 입을 다물어 버린 것. 검찰 수사는 더 진전되지 못한 채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검찰은 지난해 12월 수사기밀이 새어나간 경위를 조사했고 법원 직원 B 씨가 변호인의 열람이 금지된 수사기록을 유출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올해 들어 A 씨를 직접 소환 조사했고 사건 수임료 소득을 누락했다는 의혹까지 파헤쳤다.
결국 검찰은 6일 A 씨에 대해 공무상기밀누설 교사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A 씨에게는 차명계좌를 이용해 수임료 소득을 줄여 신고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도 적용됐다. 이 사건이 불거진 뒤 다른 지역 법원으로 전출된 법원 직원 B 씨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A 씨는 지난해 2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내는 등 지역 내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검찰은 백모 씨 부녀가 자신들의 부적절한 관계가 들통 나면서 갈등을 빚어온 백 씨의 부인 최모 씨를 살해하기 위해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타 최 씨 등 2명을 숨지게 했다며 이들을 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순천지원은 1심에서 “백 씨 부녀의 자백이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순천지원은 이 사건뿐만 아니라 아동 성추행 사건 등 주요 사건에서 잇달아 무죄를 선고해 검찰에서는 불만이 팽배했다.
지역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이 불거지자 법원 관계자가 검찰 쪽과 접촉해 해당 직원을 문책 조치할 테니 원만하게 해결하자는 뜻을 전달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올 들어 순천지원의 구속영장 기각률이 급격하게 낮아진 것도 검찰을 향한 절박한 구애(求愛)의 뜻이 담겨 있었다는 분석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