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녕 논설위원
궁금해서 영남권에 살고 있는 몇몇 지인에게 물어봤다. 나름대로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 밝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무도 당시엔 그런 공약을 몰랐다고 했다.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도 작년 후반기부터라고 한다. 과문한 탓인지, 관심이 없어서인지 명색이 신문을 만드는 나도 솔직히 대선 당시엔 알지 못했다.
영남권 유권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지난 대선 때 MB의 동남권 신공항 공약을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공약 때문에 MB에게 표를 줬는지 말이다. 아마 태반이 몰랐을 것이고, 설사 알고 있었다 해도 그것 때문에 MB를 찍은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추측된다. 평소 MB와 한나라당을 선호했던 사람은 그 공약이 없었더라도 MB에게 표를 줬을 것이고, 반대의 사람이라면 공약과 무관하게 다른 후보를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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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권 신공항 공약이 득표에 별 도움이 안 됐다면 MB는 괜한 공약으로 ‘긁어 부스럼’을 만든 셈이다. 만약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일부 상공인이 졸라 답변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진지하게 검토해보겠다”는 정도로만 약속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신행정수도 공약은 어떨까. 당시 노 후보가 충청권 전체에서 이회창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는 당선 후 이 공약으로 “재미 좀 봤다”고 했으니, 다소간 영향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전체에서도 이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수도권 유권자들도 그 공약을 지지했다고 봐야 할까. 사실 노 후보가 그해 3월 17일 대전의 민주당 후보경선 때 처음 그 공약을 내놨을 때만 해도 반응은 신통찮았다. 오히려 선거 막바지에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가 그 공약을 문제 삼아 수도권 공동화(空洞化) 우려를 제기하면서 본격적인 논란이 불붙기 시작했다.
후보들이 선거에서 지역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매표(買票)심리를 반영한다.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철석같이 믿거나 아니면 경쟁 후보에게 갈지도 모를 표를 막으려는 것이다. 뒷감당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득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행여 공약을 부도낸다면 상당한 정치적 곤경에 처할 뿐이다. 무엇보다 무분별한 지역공약은 자신을 넘어 지역과 사회, 국가에 화(禍)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독성(毒性)이 강하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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