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사생활 다 털어놓아 상품 파괴력 높여”대중들 엿보기 심리 자극… “한국판 르윈스키”
신정아 씨의 책 ‘4001’(오른쪽)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책 ‘모니카 이야기’
신정아 씨(39)가 22일 자전 에세이 ‘4001’을 내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모습에 많은 사람이 ‘모니카 르윈스키’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르윈스키 씨(38)는 미국 백악관 인턴이던 1995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인물. 이 일로 클린턴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까지 몰고 갔지만 그는 1999년 작가 앤드루 모튼의 집필로 ‘모니카 이야기’라는 책을 펴내 5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같은 해 ABC TV에 출연해 바버라 월터스 씨와 가진 인터뷰는 7000만 명이 시청했다.
사람들이 신 씨에게서 르윈스키 씨를 떠올리는 것은 신 씨가 자신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일을 거침없이 털어놓으면서도 뒤로 숨지 않고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또 책에서 실명을 밝히면서 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로부터 ‘부적절한 행동’을 당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내용의 진위는 검증되지 않았지만 ‘폭로’ 형태의 자서전을 낸 것이다.
광고 로드중
책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안 대표는 23일 “초판 1쇄로 찍은 5만 부는 만 하루 만에 전부 서점으로 나갔고, 2쇄로 최소 2만 부를 찍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에선 23일 확보한 200부가 모두 소진됐고, 인터넷서점 예스24는 22일 오후 4시 반부터 판매를 시작해 23일까지 4000부 이상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서점가에선 ‘최근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보적인 판매 추세’라는 반응이다. 예스24의 분석에 따르면 남성의 구매가 53%로 여성보다 조금 높았다.
출판계에선 이 책의 형식과 내용은 물론이고 대중의 반응에 대해서도 ‘새로운 현상’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성추행 같은 민감한 이슈를 쓰면서 해당 인사들의 실명을 직접 드는 것도 이례적인 데다 그런 책을 사보려는 대중의 심리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책 출간에 누리꾼들이 인터넷, 트위터 등을 통해 올린 반응 가운데는 “책 내용이 사실인지 의심스럽다”면서도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는 반응이 많다. 실명을 거론함으로써 대중의 엿보기 심리를 극대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미국에선 사생활을 가감 없이 밝히는 책이 많지만 도덕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에선 보기 드물다”면서 “이 책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우리 출판시장이 ‘선진국화’하는 단면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출판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4001’의 히트로 ‘폭로형’ 책 출간이 잇따를 수 있다는 예상도 출판계에서 나오고 있다. 대중의 흥미만 끌 수 있다면 어떤 소재도 ‘상품’으로 포장되는 미국식 문화가 한국 출판시장에 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광고 로드중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