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기 또 화재… 3호기도 격납용기 파손 가능성원전 20∼30km서 평균치 6600배 방사선 검출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가 사실상 통제 불능상태가 됐다. 16일 오전 4호기에서 전날에 이어 화재가 발생했고, 14일 폭발한 3호기 주변에서는 방사성 물질이 다량 함유된 것으로 추정되는 흰 연기가 대거 방출됐다.
16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대책통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45분 4호기에서 두 번째 화재가 발생했다.
4호기는 전날 화재로 격납 건물 외벽에 8m짜리 구멍이 뚫려 있어 방사성 물질이 대거 누출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4호기에 보관된 사용후핵연료가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켜 방사성 물질을 대량 누출시킬 우려마저 낳고 있다.
또 이날 오전 10시부터 대량의 흰 연기를 내뿜은 3호기는 원자로를 보호하는 격납용기가 파손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은 “2호기와 마찬가지로 격납용기에서 수증기가 방출되고 있다”며 격납용기 파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3호기에도 4호기와 마찬가지로 사용후핵연료봉이 514개나 저장돼 있어 방사성 물질을 함유한 수증기가 그대로 대기 중에 노출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는 이날 원자로 3호기와 4호기를 냉각시키기 위해 자위대에 요청해 각 원자로 상공에서 헬리콥터로 대량의 물을 투하하려 했지만 모두 좌절됐다. 3호기 상공에는 이날 오후 자위대 치누크 헬리콥터 3대가 출동했지만 방사선량이 정상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측정돼 철수했다. 또 4호기 상공에도 헬리콥터를 보내려 했지만 원자로와의 거리가 수십 m에 이르는 데다 한 번에 운반할 수 있는 물의 양이 너무 적어 취소했다. 일본 정부와 사고대책통합본부는 경찰청에 요청해 소방차보다 더 강력하게 물을 살포할 수 있는 방수차를 사용해 17일 원자로를 냉각시키기로 했다고 NHK방송이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가장 먼저 폭발한 1호기는 연료봉의 70% 이상이, 격납용기 하단부가 손상된 2호기는 30% 이상이 각각 파손된 것으로 조사됐다.
▼ 1호기 연료봉 70%이상-2호기 30%이상 파손 ▼
방사성 물질 누출이 계속되면서 이날 오전 10시 40분경 후쿠시마 제1원전 정문 부근에서는 일반인의 한 해 방사선 피폭량 한도인 1.0mSv(밀리시버트)의 10배인 시간당 10mSv의 방사선이 관측됐다. 또 실내 대피령이 내려졌던 원전에서 20∼30km 떨어진 지역에서는 통상 방사선량의 6600배에 이르는 시간당 0.33mSv가 검출됐다. 이 지역의 평상시 방사선량은 시간당 평균 0.00005mSv로 사실상 거의 검출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일본 후쿠시마 현 재해대책본부는 16일 오전 채취한 후쿠시마 시내 수돗물에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 요오드 등이 검출됐으나 검출량은 정부가 정한 음식물 섭취기준에 미달해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 핵 관련 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전보장연구소(ISIS)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은 “위성사진과 미군 및 일본 정부가 측정한 방사선량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등급(7등급)인 최악의 수준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아키히토(明仁) 일왕까지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TV를 통해 방영된 비디오 메시지에서 “사망자가 매일 증가하고 있고 희생자가 몇 명인지조차 모른다”며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무사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일왕은 “전례 없는 거대 지진이 발생한 피해지역의 비참한 상황에 마음이 아프다”며 “원전 상황이 예단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데, 관계자들이 전력을 다해 사태 악화를 막아 달라”고 덧붙였다. 또 “강추위 속에서 많은 사람이 식량 음료 연료 부족으로 매우 힘든 대피생활을 하고 있다. 구제에 전력을 기울여 피해자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호전되길 바라며 모두가 힘을 합쳐 이 불행한 시기를 뛰어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일왕은 구조 활동에 지장이 없는 시기를 골라 조만간 피해지역을 방문해 격려할 예정이다. 일왕이 왕위에 오른 뒤 TV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태 수습이 점점 힘겨워지자 일본정부도 인명구조와 지진 피해복구 작업에서 원전 피해 최소화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전날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사고대책통합본부를 설치해 사태 수습을 위한 총력태세를 갖췄다. 전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후쿠시마 원전 사태 수습 지원팀 파견을 요청한 데 이어 미군과도 협조하는 방안을 놓고 최종 조율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출된 방사성 물질은 인체에 유해한 수준이 아니라며 ‘근거 없는 낙관론’을 되풀이한 도쿄전력에 비판과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관리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의 무능함과 부주의가 일본 원전을 최악의 사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도쿄전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첫 번째 화재를 제대로 진압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도쿄전력은 12일 원자로 1호기가 수소폭발을 한 후 방사성 물질의 누출 수치 등을 축소 보도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일본에서 가장 큰 전력공급회사로 도쿄 등 수도권의 4200만 주민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도쿄전력은 산하에 3개의 원전과 29개의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의 분노가 도쿄전력뿐만 아니라 이 회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정부로 향하는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자 간 총리가 직접 나섰다. 간 총리는 이날 오후 긴급재해대책본부 회의에서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국민이 정부와 도쿄전력을 지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정보를 숨김없이 전달하지 않는다는 의혹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도호쿠 해안 지역에 머물다 연락이 끊어졌던 한국교민 2명과 여행객 3명이 16일 한국 긴급구조대에 구조되거나 생사가 확인됐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정부 신속대응팀은 이날 일본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와 가미조에서 교민 김모 씨가 자택에 생존해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부는 또 인근 대피소에 있던 또 다른 교민 김모 씨와 한국에서 방문한 그의 언니, 형부 서모 씨 등 친척 3명을 구조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