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수쿠크법, 특혜 아니라 차별해소다
한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또 조계종은 템플스테이 예산 때문에 지나치게 정치적인 행보를 보여 국민을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이번 개신교 일각의 언행은 정교(政敎)분리의 헌법 원리를 정면 부정하는 것으로 지금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최근 중동국가들은 풍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세계 자본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서방 선진국은 물론이고 말레이시아 중국 일본 등도 이 돈을 유치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유대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도 수쿠크 발행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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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가 이슬람에 특혜를 주려는 것일까? 이 질문에 올바로 대답하려면 수쿠크의 특성부터 살펴야 한다. 이슬람 율법은 이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금융거래 대신 ‘형식적 실물거래’를 만들어낸다. 예컨대 차입자가 대부자에게 자기 건물을 팔고 매각대금을 활용하면서 이자 대신 건물 사용료를 지급하는 식이다. 만기가 되면 반대매매가 이뤄진다.
문제는 부동산이 오가면서 취득·등록세 양도세 부가가치세 등 채권에는 없는 세금이 발생한다는 것. 수쿠크법은 이 같은 차별을 풀어 이슬람채권 거래의 물꼬를 트자는 취지다. 종교가 아니라 경제 문제이며, 특혜가 아니라 차별 해소인 것이다.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은 “수쿠크 수입의 2.5%가 자선에 기부(자카트)되는데 이 돈이 알카에다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자카트가 실제로 테러단체로 흘러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증이 없다. 타 종교의 자선사업에 대해 함부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기독교의 십일조에 대응하는 이슬람의 자카트는 석유무역, 건설·플랜트 등 ‘소득이 발생하는 모든 경제행위’에 부과된다. 만약 자카트가 겁난다면 이슬람권과 거래를 다 끊어야 한다.
세속주의, 문명국가의 기본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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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심한 것은 찍 소리 못하는 여권이다. 교회 일각의 반발이 전해지자 대통령과 청와대는 굴종적 침묵을 계속하고 있다. 여당은 수쿠크법을 그냥 포기할 태세다. 헌법에 대한 도전을 묵과한다면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만한 용기 있는 지도자’라고 볼 수도 없다. 진짜 낙선운동 대상은 이런 사람들이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