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200마리 사라지면 관련업체 年 2억6500만원 손실”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2차 피해가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20여 년 동안 경북 안동시에서 왕겨 판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원현 대표(48)는 구제역으로 생긴 피해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축사 보온 등에 쓰이는 왕겨 판매는 추수가 끝난 늦가을과 겨울이 대목”이라며 “왜 하필 이때 구제역이 발생해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대표는 “지난 두 달간 일을 아예 못하는 바람에 어림잡아도 1억 원쯤 피해를 본 것 같다”며 “더 큰 문제는 구제역이 끝나더라도 소가 없어서 거래처가 끊어졌고 축산농가가 회복할 때까지 1년 정도는 일손을 놓아야 할 처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안동지역은 전체 소 사육 농가의 4만4000여 마리 가운데 77.3%인 3만4000여 마리가 도살처분됐다. 돼지는 10만8000여 마리가 땅속에 묻혔다. 전체 사육 두수 11만2000여 마리의 96.4%에 달한다.
○ 구제역 2차 피해 눈덩이
13일 현재 구제역(330만 마리) 및 AI(545만 마리)로 인한 1차 피해액은 도살 가축만 약 875만 마리에 보상액만 약 3조 원으로 추산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왕겨 영양제 등을 공급하는 관련 업체들의 2차 피해도 추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클 것으로 전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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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시에서 18년 동안 사료 대리점을 운영해 온 이남영 사장(46)은 “김포지역 축산농가에 월평균 2억 원가량을 팔았지만 상당수 소가 도살처분되면서 매출이 60%가량 감소했다”며 “김포지역 축산 산업이 붕괴돼 앞으로 대리점 운영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가축 분뇨를 수거해 비료를 만드는 안동시 대동유기질비료산업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 말까지 3억6000만 원의 피해를 봤다. 이 회사 이승윤 실장은 “이동제한조치로 비료 생산은커녕 분뇨 수집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가축 약품을 공급하는 대구 북구 W약품 김모 씨(58)는 “안동지역에서 감기약 영양제 판매는 이미 끊어졌고 다른 지역도 계속 줄고 있는 실정”이라며 “매출이 40% 이상 급감했다”고 말했다.
강원 춘천시 석사동에서 곱창집을 운영 중인 길병함 씨(51)도 벌써 열흘째 재료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 인근 평창 홍천 횡성군 등에서 도축되는 재료를 공급받았지만 구제역 파동 이후 살코기를 제외한 각종 부산물이 폐기 처분되면서 공급이 완전히 끊겼다. 길 씨는 “끓이고 익혀 먹는 소 부산물을 굳이 폐기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물량을 확보할 방법이 없어 생계까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충남 천안시 병천면 병천순대거리의 식당 30여 곳도 파리만 날리고 있다. 손님을 끌려면 값이라도 내려야 하지만 재료값이 올라 오히려 국밥은 5000원에서 6000원으로, 포장순대는 8000원에서 1만 원으로 가격을 올렸다. 순대의 주재료인 돼지 머릿고기와 염통 혀 간 등 돼지 부산물과 채소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 도살 가축만 875만 마리 달해
전국 각 시도는 육류도매업 육가공업 관광산업 등에서 구제역 및 AI에 따른 2차 피해가 클 것으로 보고 있지만 방역과 도살처분에 정신이 없어 피해 조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경북도는 구제역이 끝난 뒤에나 피해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도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관련 기업 등의 매출액 감소 현황을 파악하는 등 2차 피해액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며 “피해가 큰 업체는 경영안정자금을 저리로 지원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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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 광범위한 데다 연관성 입증 어려워
사정은 심각하지만 구제역과 AI로 인한 2차 피해의 직접 보상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범위가 광범위한 데다 피해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분야도 많아 추산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율 행전안전부 재난안전관리관은 “2차 피해를 국가 예산으로 보상해 주기에는 광범위하고 피해 규모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 산정이 어렵다”며 “2차 피해를 보상해 주고 싶어도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1년 구제역으로 가축 620만 마리를 도살한 영국도 한국과 유사한 2차 피해가 발생했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는 것.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 역시 “구제역 때문에 많은 지역에서 해마다 여는 지방 축제는 대부분 취소됐고 이에 따른 관광객 감소로 주민 수익이 크게 줄었는데 이런 경우 역시 보상해 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안동=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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