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내차례” 바쁜 낙하산
낙선한 여당 국회의원, 퇴직 고위 관료,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인사 등 정치권과 관계 인사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연줄을 총동원해서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암투를 벌이고 있다.
공공기관장 인사가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낙하산 인사로 흐를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정책목표인 ‘공정사회 구현’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기관 안팎에서는 청와대가 연초부터 기관장 인사를 어떤 기준에서 할 것인지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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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기관장 교체는 3월부터 시작돼 67개 기관의 기관장 임기가 만료되는 6∼8월 절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임기가 끝나는 공공기관장들은 정부 출범 이후 5개월 안에 임명된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공공기관장 교체를 앞두고 ‘줄 대기’로 가장 몸살을 앓고 있는 부처는 33개 산하기관의 기관장이 교체되는 지식경제부다. 특히 지경부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의원을 오랫동안 보좌해 ‘왕(王)차관’으로 불리는 박영준 제2차관이 임명된 뒤 범여권 인사들의 ‘줄 대기’가 크게 늘었다는 지적이다.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 석유공사 등 민간 출신이 사장을 맡고 있는 기관은 경영실적과 상관없이 고위 관료나 정치인 출신의 낙하산 인사로 교체될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 나온다. 지경부 산하 최대 공기업인 한전은 김쌍수 사장의 임기가 반년 이상 남은 가운데 벌써 여러 인사들에 대한 하마평이 돌면서 직원들의 동요가 일어나자 지난해 말 감사실이 직접 나서 간부들에게 ‘유언비어 유포 금지’ 공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산하에 대형 공공기관을 대거 거느리고 있는 지경부 고위 공무원들의 책상에는 벌써부터 후보들이 직접 전달한 이력서가 수북이 쌓여 있다”며 “기관장을 노리는 인사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라고 말했다.
■ 벌써 지경부 문턱 닳아 업무 못볼 지경
공공기관장 인사 줄대기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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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부처 출신인 전직 관료나 우호적인 정치권 인사를 기관장으로 앉히기 위한 정부 부처 간 힘겨루기도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각 부처의 전직 관료들이 인사 담당자들에게 특정 기관에 자신을 밀어 달라는 지원 요청이 쇄도해 장관과 인사팀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정치권 인사뿐만 아니라 현 정부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까지 라이벌 후보가 누가 될지 파악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공공기관장 인사가 공정사회 구현 시험대 될 듯
올 들어 ‘줄 대기’ 경쟁이 더욱 격심해진 것은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2년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시기를 놓치면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박감 때문이다. 정부 출범 과정과 집권기간에 공로를 쌓은 인사들의 ‘논공행상’에 대한 기대와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 자리 하나는 꿰차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줄 대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
특히 신임 기관장은 부사장과 감사를 비롯한 3, 4개 임원 자리에 대한 인사를 결정할 수 있어 지난해 말부터 기관장 후보는 물론 ‘떡고물’을 노리는 후보 지인들까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 핵심층에 줄을 대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줄 대기’ 관행을 차단하기 위해 2008년부터 대부분의 공공기관장을 추천제 대신 공모제로 뽑기로 했지만 ‘낙하산 인사’를 막는 데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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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이번 공공기관장 인사가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화두로 ‘공정사회’ 구현을 내건 정부의 최대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6월 발표될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기관장 교체에 중요한 잣대로 활용할 계획이다. 공공기관 평가를 통해 실적이 좋은 기관장의 연임 기회를 넓히고 실적이 좋지 않은 기관장은 임기가 차지 않더라도 일찌감치 교체해 실적 중심의 인사교체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열린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서 공공기관장에 대해 “훌륭히 일 잘하는 분은 그 직을 계속 유지하도록 하는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며 “일을 잘하는 분과 그렇지 않은 분이 똑같은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09년과 지난해 공공기관 평가단장을 맡았던 이만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거 직후였던 2008년에는 대선에 도움을 준 인사들 위주로 기관장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전문성 있고 능력 있는 인사가 기관장을 맡아야 한다”며 “투명한 공공기관 평가를 강화해 낙하산 인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