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혁명도… 이집트 민주화도… 불만은 ‘빵’에서 시작됐다
○ 시위의 도화선이 된 식품 물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폐막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경제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신흥국 리스크가 올 세계 경제의 최대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 포럼에서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신흥국 정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블룸버그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신흥국에서 소비자 가격지수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식료품과 연료 가격의 급등은 중동에서처럼 정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일 노점을 하던 26세 청년의 분신자살이 시발점인 된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도 ‘빵’의 문제였다. 공식 물가상승률은 4.5%지만 식료품 가격 상승률은 10%를 훨씬 웃돌았다. 이집트 정부는 물가상승률이 12%를 넘어서자 식품보조금 지급까지 검토했지만 25일 첫 시위를 막지 못했다. 인근의 요르단 알제리 수단 등 북아프리카 국가와 중동국가로 번지는 시위의 배경에도 살인적인 고물가가 있다.
세계은행은 최근 글로벌경제전망보고서에서 “식품 가격 상승을 매우 우려한다”며 “2008년과 비슷한 상황이 목격된다”고 밝혔다. 실제 2007년 말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치솟는 식품 가격으로 카메룬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 10여 개국에서 식량 폭동이 일어나 정권을 위협했다.
○ 인플레 전쟁에 글로벌 경제 달렸다
아시아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신흥국의 대표 주자인 인도 정부는 여러 차례 식량 폭동을 경험해 물가 상승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인도는 식료품 가격이 지난 1년 동안 18% 상승했으며 특히 주식인 카레의 주재료로 쓰이는 양파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5배 가까이 상승했다. 인도네시아도 20일 식품 가격 상승을 저지하기 위해 밀 대두 등 50개 품목의 수입관세를 철폐했으며 한국도 7개 품목에 할당관세를 적용해 관세를 내렸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북아프리카 및 중동 시위 확산이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부채질해 각국이 더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노출될 것”이라며 “회복세를 보이는 미국 경제에도 이번 사태가 주요 변수”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조되었다가 최근 잠잠해진 보호무역주의가 부활하면서 한국 경제는 물가 상승과 함께 수출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화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신흥국의 정치 불안은 수급 불안에 따른 식품 가격 급등이 원인”이라며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안정적 수급을 위해 해외 유통회사를 설립하고, 식량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