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구제역 사태를 두 차례 겪으면서 내놓은 대(對)국민 담화문의 내용이 판박이다. 12월 15일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연단에 선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정부는 경기 양주 연천지역 돼지사육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함에 따라 위기관리 태세를 더욱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담화문을 읽어 내려갔다. 8개월 전인 4월 22일 맹 장관과 함께 마이크를 잡은 장태평 당시 농식품부 장관은 “정부는 충북 충주의 돼지사육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함에 따라 위기관리 태세를 더욱 강화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구제역 발생 지역만 경기에서 충북으로 바뀌었다.
이어 유 장관은 “축산농가는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방역대책에 적극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장 전 장관의 담화문과 완전히 일치하는 문장이다. 유 장관의 담화문은 1928자로 1709자였던 장 전 장관의 담화문보다 219자 늘어났다. 가장 큰 차이는 유 장관이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관을 단장으로 하는 구제역 정부합동지원단을 경기도 제2청사에 설치하여…”라는 문장(105자)을 추가한 점이다. 장 전 장관이 ‘구제역 발생 지역의 쇠고기 돼지고기 등은 시중에 유통될 수 없으므로 안심하고 드셔도 된다’라고 했던 것을 유 장관은 ‘국민 여러분은 우리 축산물을 안심하고 드셔도 된다. 구제역 발생 지역의 쇠고기 돼지고기는 시중에 유통되지 않는다’라고 고쳤다. 일부 단어를 바꿔 넣었지만 주요 정보는 100% 똑같다.
담화문이 나오던 시점의 구제역 확산 및 피해 상황은 크게 달랐다. 12월 15일은 구제역 발생 17일째로 가축 도살처분이 무려 15만여 마리에 이른 시점이다. 4월 22일은 구제역 발생 14일째로 4만여 마리를 도살처분하는 데 그쳤다. 정부가 가축 전염병 때문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까지 구성한 것은 12월이 처음인데도 ‘앵무새 담화문’을 낸 것이다. 농식품부가 사상 초유의 구제역에 얼마나 성의 없이 대처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정부는 위기경보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하면 그에 걸맞은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국민에 요구했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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