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돕자…잘살자” 수로 내고 2모작… 알고보니 새마을운동
‘한국에서 온 영웅’ 2년 전 트라페앙스나오 마을에 파견돼 서로가 서로를 돕는 품앗이형 원조사업으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한국에서 온 영웅’이라는 칭찬을 듣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 김광욱 단원이 아이들과 함께했다. 1981년에 태어나 가난과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이 신세대 청년은 “가난한 이웃나라 사람들을 도우며 내가 얼마나 행복한 나라에 태어났는지를 알게 돼 새삼 애국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낯선 외국인을 보자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콴욱 콴욱’ 하는 소리가 들린다. 2년 전 이 마을에 와 주민들의 삶을 180도 바꿔 가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 김광욱 단원(30) 이름을 부른 것이다. 그들에게 한국은 곧 ‘김 단원의 나라’와 동의어였다. 주민 1200여 명 250가구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서 그는 ‘영웅’으로 불리고 있었다.
김 단원은 2009년 4월 지역사회개발분야 봉사단원으로 이곳에 파견됐다. 그는 마을에 온 첫날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쳐다보던 주민들의 눈초리를 잊지 못한다. 며칠 동안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마을 어린이들의 피 묻은 발바닥이 생각났다. 모두 흙길을 다니느라 발바닥이 피투성이였다. 그로부터 6개월간 김 단원의 일과는 구급약 가방을 챙겨 마을로 출근하는 것이었다. 주민들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보건소가 7km 이상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보건소까지 간다 해도 돈이 없어 뼈가 보일 정도로 큰 상처가 나도 간단한 소독약조차 바르지 못하고 있었다.
김 단원은 자신이 배운 간단한 의료지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벅찬 상처를 입은 환자들은 사진을 찍어 서울의 아는 의사들에게 묻는 식으로 치료를 했다. 주민들이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제 뭔가를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시급한 일이 식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김 단원은 우물이 대부분 고가의 수입펌프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순한 부품교체에도 100달러 이상이 들어 주민들은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는 지속가능하게 쓸 수 있는 우물을 만들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우물 파기. 우물 하나에 10가구가 사용하는 것으로 해서 250여 가구를 묶어 24개 소공동체를 만들었다. 각 소공동체는 어느 위치에 우물을 만들지, 누가 관리를 할지 등 모든 사항을 스스로 결정하고 직인까지 찍어 문서를 남겼다. 굴착에서부터 식수 검사까지 모든 일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하게 했다. 김 단원은 “처음엔 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치던 주민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지만 나중엔 서로 돕는 것이 결국 자기를 이롭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주민들도 너도나도 나섰다”며 “우물 파기 품앗이로 공동체성을 회복한 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고 말한다.
마을 가로지르는 수로 바테이의 트라페앙스나오 마을을 가로지르는 수로.한국 정부의 예산과 마을주민들의 노동력이 합쳐져 만들어진 이 수로 덕분에 2모작이 가능해 소득이 크게 늘었다.
김 단원이 마을 개발을 하면서 제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서로 서로 돕는 마음’을 끌어내는 일이었다. ‘원조는 공짜’라는 인식도 없앴다. 가구마다 대장균을 99.9% 걸러주는 세라믹 토기 정수기(대당 10달러)를 나눠줄 때도 절반(5달러)은 주민들이 갚아 나가는 식으로 했다. 정수기는 현재 70%의 가구가 쓰고 있으며 대출금도 모두 회수됐다.
김 단원은 “나는 ‘새마을 운동’을 모르는 세대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결국 내가 했던 일이 옛날 부모 조부모 세대가 했던 새마을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봉사를 통해 바뀐 것은 마을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1981년생으로 가난이나 배고픔의 고통을 모르고 자란 신세대인 그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더운 날씨에도 냉장고 없이 살고 있는 이곳 사람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부자 나라에 살고 있으며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 바테이(캄보디아)=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캄보디아인이 보는 한국
“코레!” 돈보다 마음 다하는 원조에 감사… “코레!” 수자원 등 개발 마스터플랜 각광
바테이의 총 마을 사람들이 마을회관 앞에 모여 ‘한국 최고’를 외치며 환한 표정으로 엄 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한국의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마을회관도 새마을운동 원조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것이다.
어느덧 마을에 닿았다. 바테이 삼보에 위치한 이 나라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이 마을은 한국 농어촌공사가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한국식 새마을운동을 펼쳐 180도 바꾼 곳이다. 확성기에서 노래가 울려 퍼지는 것도 옛날 한국 농촌에서 보던 풍경이다. 마을개발위원장 미엣 남 씨(65)는 “한국의 도움으로 바뀐 생활의 변화란 게 말할 수 없이 크다”면서 ‘코레 코레’를 연발했다.
훈센 총리는 공개적으로 정책 벤치마킹 대상으로 한국을 꼽고 있다. 이는 고위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캄보디아 농촌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농촌개발부 사오 시보안 차관(42)은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꼽았다.
이 나라에서 또 한국형 원조가 각광을 받는 대목은 개발계획 마스터플랜 원조. 2008년 한국수자원공사는 KOICA 무상원조금액 13억 원을 받아 기술진 100여 명을 동원해 수자원개발 마스터플랜을 짜줬다. 캄보디아 전역을 다니며 수자원 현황을 정밀 분석한 것. 현장 실측을 바탕으로 강 유역에 따라 지역을 나누고 사용량 저수량 유수량을 분석해 향후 물이 얼마나 필요한지, 가용할 수 있는 수자원은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주고 부족할 경우에 대비해 어디 어디에 댐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는 프로젝트였다.
수자원공사 이경환 팀장은 “이 나라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에 뭐가 어디에 얼마 묻혀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행정력이 뒤떨어진다. 중·장단기 개발마스터플랜을 짜는 것은 그리 큰돈이 들어가는 원조사업이 아닌데도 받는 쪽에선 매우 필요한 분야라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