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인에게 보낸 ‘천년의 지혜’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돼 있는 고려대장경 경판은 1251년 완성된 것으로 고려가 두 번째로 만든 재조(再雕)대장경이다. 하지만 우리 학계는 1960년대 초만 해도 이보다 앞선 고려대장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1965년 일본 교토를 방문한 우리 학자들은 해인사 경판으로 찍은 대장경과는 전혀 다른 고려대장경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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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2011년이 열렸는데도 기념행사 소식이 별로 들리지 않는다. 초조대장경 경판이 있었던 대구, 합천 해인사가 있는 경남에서 지자체 차원에서 각각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서로 역할 분담이 안 돼 대구와 경남의 행사는 중복된 것도 있다. 서울에서는 이렇다 할 기념행사조차 없다. 자칫 하면 지방 행사 정도로 그치고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이다.
고려대장경은 가장 완벽한 대장경으로 꼽힌다. 중국 송나라에서 983년 완성한 대장경이 한자로 된 세계 최초의 대장경이고 고려대장경은 두 번째가 되지만 내용 면에서는 단연 으뜸이다. 일본은 자체적으로 대장경을 제작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우리에게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해인사 대장경을 찍게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지방 행사로 그칠 일 아니다
고려대장경 경판의 글씨를 새기는 작업에는 총인원 130만 명이 동원됐다. 외국과 해상 무역을 활발하게 했던 고려가 이런 막대한 작업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부(富)를 축적했음을 알 수 있다. 더 대단한 것은 고려의 문화적 학문적 수준이다. 대장경에는 불교 경전과 논문 이외에 역사 시문(詩文) 설화 판화 등 다양한 내용이 실려 있다. 세계 곳곳에서 최신 학문과 지식을 수집해 대장경 안에 집약했던 것이다. 나무가 뒤틀리지 않고 장기 보관이 가능하도록 목재를 가공하는 기술, 글씨를 나무 위에 새기는 장인인 각수(刻手)의 솜씨 등 첨단 기술이 대장경 제작에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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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현대 한국은 다문화사회를 맞고 있다. 최첨단 정보기술(IT) 강국이기도 하다. 고려 역시 개방적이고 다원화된 사회였다. 고려의 수도 개경은 이슬람권을 포함한 외국 상인들로 북적였다. 15세기 독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은 지식의 대중화를 이끌어 세계를 바꿔놓은 혁명적 사건으로 평가되지만 고려는 이미 13세기 초에 금속활자를 이용해 인쇄를 하고 있었다. 도자기의 원조인 중국조차 고려청자의 비색(翡色·푸른빛)에 감탄할 만큼 고려의 기술은 탁월했다.
하지만 우리는 금속활자를 한국의 르네상스로 연결시키지 못했고 대장경과 청자에 들어 있는 최첨단 지식과 기술 체계도 이어나가지 못했다. 현대 한국은 앞으로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고려대장경 1000년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학계에서 조선시대 역사는 집중 연구되고 있으나 고려 역사는 소외돼 왔다. 고려의 성공과 패망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처럼 대장경 밀레니엄에서 우리 스스로 살펴볼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순한 불교계 행사로 봐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지방이 아닌 국가적 행사로 제대로 기념했으면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