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방공예 모임을 찾아서
길고 긴 세월이 겹겹이 앉은 대청마루에 꽃이 내려앉았다. 천연염색으로 곱게 물들인 천을 한땀 한땀 바느질로 이어 만든 옥사연잎다포가 다기와 잘 어우러진다. 쌈지사랑 규방공예 연구소 강사 김영선 씨의 작품. 사진 제공 쌈지사랑 규방공예연구소
규방공예(閨房工藝)란 예로부터양반집 규수와 아낙네들이 침선(바느질)으로 다양한 생활 작품을 만들던 것을 말한다. 여인들의 손작업으로 그 명맥이 이어져 왔다. 천연염색을 바탕으로 조각보, 자수, 매듭, 한복 및 장신구 만들기가 규방공예에 속한다. 규방공예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조각보가 꼽힌다. 조각 천을 활용한 기하학적이고 창의적인 패턴이 특징. 소품으로는 바늘방석, 가위집, 수저보, 골무, 도장주머니 등이있다.
숨 막힐 듯한 템포로 빠르게 달려가는 요즘 세상에 재봉틀도 아니고 무슨 손바느질이냐는 질문도 나오겠지만, 이 여인들은 바느질에서 ‘숨구멍’을 찾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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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지승신 씨(47)는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고 이날 규방모임에 참석했다. 조각보 바느질에 여념이 없다. 마흔을 넘기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운동도 시작했다. 어린 시절 배웠던 자수와 매듭이 떠올랐다. 인터넷을 검색해 규방공예를 가르쳐 주는 곳을 찾았고 지난해 7월부터본격적으로 바늘을 들기 시작했다.
“힘들고 어렵고 고민이 있을 때 바느질을 해요. 천을 재단하고 바느질을 하는 과정은 인내심이라는 단어와 나란히 놓이죠. 바느질하는 시간은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에요.”
그는 훗날 집을 지어 바느질 공방을 운영하면서 사는 꿈을 꾸고 있다. ‘별이 빛나네’라는 닉네임을 쓰는한 여성(37)은 귀주머니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3월에 일본 사람과 결혼한다. 한류열풍이 한창이던 2004년 일본에서 국제교류 업무를 했는데 당시 현지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한질문을 많이 받았다가 제대로 대답을 못한 적이 있다.
“한국 사람이면서도 우리 것에 대해 잘 몰라서 제대로 알려드리지 못한 게늘 마음에 걸렸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전통에 대해 꼭 배우겠다는 결심을 실천하는 거예요.(웃음) 결혼하면 일본에서 살 텐데 잘 익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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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소재+핸드메이드=명품
만든 이의 개성이 드러나는 조각보.
고 있다.
“규방공예는 바느질 기법을 이용해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작품을 만드는 겁니다. 옛것을 단순히 수집하는 데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2011년에 사는 현대인이 직접 참여한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가 완성되는 순간 세계적인 명품이 탄생하는것이죠.”
그는 2002년 프리챌에서 관련 카페를 처음 열었고 2004년부터 네이버로 옮겨와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원래 그는 미래 트렌드 및 벤처기업 컨설팅 일을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다 여생을 함께할 아이템을찾는 데 나섰다. 흔한 것보다는 역시전통에 뿌리를 둔 ‘우리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규방공예를 선택했다.한복 전문 시장을 수도 없이 찾아가일을 도우며 네트워크를 만들었다.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상인들이 이제는 값비싼 천의 자투리를 챙겨뒀다가 그에게 건넨다. 그는 규방공예 작품의 종류별로 만드는 법을그림으로 그려 매뉴얼화하고 천을 재단하는 일을 맡아 한다. ‘배워서 남주자’라는 카페 모토에 따라 잘하는수강생들이 강사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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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는 서울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에서 조각보를 주제로 전시회를, 8월에는 인사동에서 정기회원전을 열 계획이다. 프랑스 파리 전시회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조각보는 서양의 퀼트와는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한국의 색깔과만드는 이의 개성이 분명하게 드러나죠. 자투리 천을 버리지 않고 이어서쓰는 조각보에는 따스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왼쪽부터)자투리 천으로 만든 조각보. 한복 천으로 만든 핸드백. 천연염색 누에고치 매듭 노리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