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북이 진짜 전력이 필요해 핵개발을 시도한 것일까. 우리가 경수로를 지어주거나 직접 전력을 공급했다면 북이 핵개발을 포기했을까. 북이 상당수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도 밤이면 북한 전역이 암흑천지로 변하는 것만 봐도 전력 생산은 핵개발을 위한 구실일 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북의 핵개발 포기와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돈 세례를 퍼부은 그간의 ‘정성’이 허망할 뿐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Northern Limits Line)에 대한 북한의 주장을 들어보면 북의 코앞에 있는 서해 5도와 인근 해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마치 우리 잘못 같다. 북은 “남의 집 마당에 집주인도 모르게 금을 그어놓고 제 마당이라고 우겨대는 날강도적인 주장” “제2의 조선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미국이 만들어 놓은 도화선”이라고 강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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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만으로도 NLL이 북을 ‘배려’하기 위한 선의(善意)에서 설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북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땐 가만히 있다가 NLL이 점차 성가신 존재로 여겨지자 1999년 NLL 훨씬 남쪽을 지나는 자신들만의 해상 군사분계선을 들고 나왔다. 남쪽에 만만한 정부가 들어선 것을 기회로 NLL 무력화에 본격 나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강력히 대응하기보다 NLL을 재협상하거나 양보할 수 있다는 투의 그릇된 신호를 보내 북의 환상을 키웠다. 노무현 정부 때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닌 안보 개념”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북은 자신들이 구상해온 ‘서해 장악’의 환상이 깨질 위기를 맞고 있다. 그 환상을 지키기 위한 발버둥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의 본질이다. 우리는 북이 핵처럼 억지를 부리면 NLL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미망에서 깨어나게 해야 한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동영상=대북 쌀지원은 1석5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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