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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일과 삶]한국베링거인겔하임 군터 라인케 사장

입력 | 2010-12-11 03:00:00

전통 연에 빠진 푸른 눈의 CEO… “창사125돌 기념 125개 연 한강서 날렸죠”




군터 라인케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사장은 “연에는 한국의 은은한 선과 색채가 있어 무척 아름답다”며 연 예찬론을 펼쳤다. 라인케 사장이 서울 중구 남대문로 본사 사무실에서 연 만들기 장인 노유상 옹이 만든 연을 선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베링거인겔하임 본사에서 만난 군터 라인케 사장(59)은 명함 두 장을 내밀었다. 하나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대표이사 사장 명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울특별시 명예시민 라인강’이라고 적힌 명함이었다.

‘라인강(羅仁江)’은 라인케 사장의 한국 이름이다. 라인케 사장은 지속적으로 한국의 무형문화재를 후원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됐고, 직원들이 이를 축하하는 의미로 한국 이름을 지어 선물했다. 한자로 풀이하면 ‘어질게 흐르는 큰 강’이라는 뜻이다. 한국에 들어와 서울 용산구에서 처음으로 근무한 것을 기념해 ‘용산 라씨’로 본관도 정했다. 그는 “라인강이라는 이름이 고향인 독일을 대표하는 강과 발음이 같고, 줄기차게 흐르는 강처럼 한국과 독일을 이어 달라는 의미여서 마음에 든다”며 흡족해했다.

○ 연 날리는 푸른 눈의 CEO

9월 19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반포지구에서는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요즘엔 한국인들도 연을 만들거나 날리는 모습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데 외국인인 라인케 사장이 직접 대나무를 깎아 연을 만들고 이것을 하늘로 날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산책 나온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 베링거잉겔하임 창사 125주년을 맞아 라인케 사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나와 연 날리기 행사를 벌인 것. 직원들이 단체로 연 만들기를 배우고, 임직원들의 소망을 적은 125개의 연을 하나로 이어 날리는 장관이 연출됐다.

창사 125주년 기념행사로 연 날리기를 한 것은 라인케 사장의 ‘전통 연 사랑’ 덕분이다.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는 특히 연에 매료됐다. 사무실에는 대형 연을 액자에 넣어 걸어놓았고, 선물용으로 쓸 대형 연 몇 개를 사무실에 항상 준비하고 있다. 그는 “전통 연은 한국의 은은한 선과 색채가 묻어나고, 하늘을 날 때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무척 아름답다”며 감탄했다.

라인케 사장은 연 날리기에 만족하지 않고 연 만들기 장인(匠人)인 노유상 옹에게 직접 만드는 방법을 배울 정도로 열성적이다. 또 혼자 좋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연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연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사무실을 찾은 손님에게 연을 선물로 주거나 해외출장을 갈 때 연을 챙겨가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그는 “유럽 등 외국인들에게 한국 연은 특별한 선물”이라며 “지인들에게 연을 선물할 때마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면서 그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한다”고 말했다.

○ “한국 문화 알아야 한국서 사업”

1997년 처음 한국에 온 라인케 사장은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창립자인 한광호 명예회장(한빛문화재단 명예이사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을 비롯한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 명예회장은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한국실을 만들도록 거액을 기부했고,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화정박물관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라인케 사장은 특히 유럽에 비해 한국의 전통문화가 제대로 보존되고 있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는 “유럽에서는 수백 년 된 집들이 아직도 많이 보존되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오래된 전통 가옥을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며 “젊은이들도 한국의 전통과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한국 사람과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질수록 각별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2007년부터 ‘서울시 전통예술인상’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2007년에는 노유상 옹, 2008년 매듭 장인 김은영 선생, 지난해에는 조선 궁중 전통주인 향온주 장인 박현숙 선생을 후원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9일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가 주최한 ‘2010 한-유럽연합 협력상’ 시상식에서 ‘사회공헌 부문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상패를 받았다.

○ 축구 선수에서 기업가로


라인케 사장은 10대 시절 독일 유소년 축구대표로 뛰었을 만큼 촉망받는 축구선수였다. 그런데 18세 때 1부 리그 프로구단과 계약을 앞두고 경기 중에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몇 주간의 치료를 거쳐 부상에서는 회복했지만 전과 같은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 큰 부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과감한 공격을 하지 못했던 것.

이후 진로를 바꿔 대학에 진학해 공부하면서 2부 리그 선수로 활동하던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선수로 활약하던 차범근 감독을 만났다. 1, 2부 리그 팀들이 동시에 참가하는 대회에서 두 사람이 경기를 벌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지금도 한국에서 종종 만나고 있다.

라인케 사장은 차 감독에 대해 “2002년 월드컵 4강전에서 한국-독일전이 끝나고 같이 식사를 했는데, 당시 한국이 진 상황에서도 차 감독이 객관적으로 경기를 평가하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공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차 감독의 경기에 초대받기도 하고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설명했다.

전직 축구선수답게 그는 축구를 좋아해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 모두 개최지로 날아가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회사에서도 직원들과 종종 축구 경기를 하고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 그는 “축구를 통해 직원들과 우애를 쌓고 경기 후 막걸리를 함께 마시면 직원들과 유대감이 한층 두터워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 군터 라인케 사장은

―1951년 독일 출생

―1976년 하겐&도르트문트대 경제학과 졸업

―1976년 독일 드레스드너은행 회계감사원

―1980년 독일 베링거잉겔하임 본사 수석 회계감사원

―1987년 독일 아나스코 재무담당 이사

―1990년 독일 바이오테락스 재무 경영 담당 이사

―1991년 독일 데콘타 사장

―1997년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최고재무책임자 및 제조분야 책임자

―2004년∼ 한국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 사장

―2006년∼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