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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연평도 포격 도발]섬 떠나온 찜질방 피란민 300명, 시군 무관심에 또다른 ‘섬 생활’

입력 | 2010-11-27 03:00:00


피란처도 이들에게는 ‘섬’이었다. 연평도 피란민의 임시 거처인 인천 중구의 대형 찜질방은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피란민들에겐 불의의 포격을 당한 연평도처럼 고립된 곳이었다. 지내기 불편한 친인척 집을 떠나온 이들까지 더해져 26일 ‘찜질방 피란민’은 3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이 수시로 다녀갔지만 당장 피란생활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찜질방 측은 연평도 피란민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먼저 인천시 측에 제안했다. 찜질방 ‘인스파월드’의 서기숙 대표는 “그동안 연평도 주민들이 육지를 오갈 때면 자주 이용해 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임시 거처로 쓰라고 자발적으로 내놓은 것. 처음 찜질방 측은 50명 정도가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연평도 피란민이 늘어나면서 부담이 커지게 됐다. 피란민들의 숙식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현재 업소 측은 북의 도발 이후 사흘 내내 무료로 숙소와 하루 세 끼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연평도 피란민들은 옹진군에 비용을 부담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옹진군청 측의 답변이 없는 상태다.

피란민들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이들을 돌보는 일손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옹진군 측에 인력을 지원해 달라고 했지만 찜질방에 나와 있는 옹진군청 주민생활지원과 관계자는 “설거지 등은 우리 일이 아니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만 내놓았다. 결국 찜질방 측이 직원을 전부 동원해 교대로 24시간 찜질방을 관리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보다 못한 연평도 피란민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민자원 봉사대를 조직했다. 나이가 젊은 축에 끼는 연평도 부녀회 회원들이 식사 준비와 설거지, 어르신 돌보기, 구호물품 배급에 일손을 나눠주고 있다.

찜질방 피란민의 하루는 길기만 하다. 주민들은 이웃끼리 모여 앉아 연평도에 다시 들어가야 할지, 앞으로 생계는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있다. 26일 연평도 인근에서 또다시 포성이 들렸다는 소식에 일부 주민은 놀라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학교에 갈 수 없는 어린이들은 하루 종일 찜질방에 있는 컴퓨터 게임을 ‘벗’ 삼아 지냈다.

피란 사흘째로 접어들면서 양말 담요 등 필요한 물품이 지원되고 상시 진료소가 세워지면서 주민들의 시름도 일부 덜어졌다. 이날 가천의대 길병원과 옹진군청 보건소는 1층 로비와 주민들이 머물고 있는 2층 찜질방에 임시 진료소를 설치했다. 인천 중부소방서에도 25일부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응급차와 소방차를 대기시켜 놓았다. 이날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송영길 인천시장,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찜질방을 방문해 주민들에게 정부 지원을 약속했다. 연평주민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최성일)는 “마을을 보수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해준다고 해도 연평도에서 다시 살 생각은 없다”며 이주대책을 요구했다.

인천=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