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런 일이 언제든 내게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 굳이 가족을…”이라며 말을 흐렸다. 자신의 남편 또는 아버지가 40년 넘은 노후 비행기를 몰다 추락사고로 순직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아 동료의 영결식에는 가족을 동반하지 않는 것이 공군의 관례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우리 공군 전투기의 절반가량이 생산된 지 30년 넘은 노후 기종이며 매년 2.9명의 장교가 훈련 중 추락사고로 순직한다는 동아일보 보도(18일자 A10면)에 독자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독자는 e메일을 통해 “어떻게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주최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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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동안의 사고 원인에 기강 해이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12일 사고 전에도 올 들어 이미 5명의 조종사가 추락사고로 순직했다. 앞서 동료들의 사망을 보고도 조종사들이 해이한 정신상태로 조종간을 잡을 수 있었을까. 한 공군 장교는 “자기 생명이 달렸는데 한 시간 남짓의 비행 동안 정신을 놓을 사람이 과연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예산 부족으로 고심하는 공군 수뇌부에게는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군 내부에서는 조종사 순직의 근본 원인으로 기종의 노후화, 나아가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개선 노력도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꼽는다.
올해 차세대 전투기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됨에 따라 공군은 30년 넘은 F-5 전투기를 수리해 7년 더 운용하기로 했다. 통계대로라면 내년에도 3명의 조종사가 순직할지 모른다. 10년차 공군 파일럿 1명을 양성하는 데는 F-5는 42억 원, F-16은 87억 원, F-4는 75억 원이 든다. 인명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만약 경제논리로만 따진다 해도 파일럿은 너무도 소중한 국가자산이다. 주어진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군의 미덕이라지만 조종사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도 군의 책임이다.
유성운 정치부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