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수학과 과학의 한자 용어 중에는 그 자체만으로는 뜻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 용어를 차용한 다수의 용어가 그러하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들여온 함수(函數·function)는 입력된 수를 모종의 규칙에 따라 바꾸어 출력해 주는 상자에 비유할 수 있기 때문에 상자 함(函)에 다소간의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지만, 학생들에게는 그저 외워야 하는 생소한 용어일 뿐이다.
그에 비해 ‘부채꼴’은 부채 모양이라는 의미를 그 자체로 드러내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다. 순우리말 용어의 이런 장점을 고려하여 물리학회를 중심으로 한때 용어의 순우리말화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한 예로 장력을 ‘켕길힘’, 회절을 ‘에돌이’로 표현했는데 ‘켕길’은 부정적인 어감을 주고 ‘에돌이’ 역시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주파수는 ‘떨기수’, 적외선은 ‘넘빨강살’, 단열팽창은 ‘열끓음 불음’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구어적 성격이 강한 용어는 일상 언어와 뒤섞여 고유의 의미를 확보하지 못하고, 순우리말로 풀어 쓰면서 음절이 많아져 용어의 간결성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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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와 순우리말 용어는 나름의 장단점을 갖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단순하게 선택할 문제는 아니다. 우선 어려운 한자를 포함하거나 지나치게 현학적인 용어는 직관적인 의미 파악이 가능하도록 순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돼 자연스럽게 뜻을 알 수 있는 한자어라면 용어에 사용해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횡파와 종파는 굳이 ‘가로파’와 ‘세로파’로 부르지 않아도 학생들이 횡(橫)과 종(縱)의 뜻을 알기 때문에 반드시 순우리말로 바꿀 필요는 없다. 한자 용어를 가르칠 때는 한자를 병기하고 그 의미를 함께 알려주면 도움이 된다. 방출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복사(radiation)’는 어려운 용어이지만, ‘바퀴살 복(輻)’과 ‘쏠 사(射)’를 연결시키고 바퀴에서 쏘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다.
특정 제도가 불합리한 면이 있더라도 널리 퍼져 있어 바꾸기 어려운 현상을 ‘선점(qwerty)효과’라고 한다. 타자기가 만들어질 당시의 초기 자판은 ‘qwerty’의 순서로 자모를 배열했는데 이후 인체공학 이론에서 기존 자판의 불합리함을 지적했지만 이미 사용자에게 익숙해진 자판은 바꾸기 어렵다는 데서 이런 말이 유래했다. 이러한 ‘qwerty 효과’를 고려할 때 오랫동안 널리 사용된 용어를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어려움을 일으키는 용어라면 개정할 필요가 있다.
어떤 내용에 대한 학습은 용어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고, 학습한 내용을 정리할 때도 용어를 동원한다. 따라서 직관적으로 의미 파악이 용이한 용어는 수학과 과학 학습을 촉진할 수 있다. 최근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과학·기술·공학·수학(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을 교육의 줄기(stem)와 같이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정책의 모색도 중요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의 개정은 STEM 교육을 활성화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박경미 객원논설위원·홍익대교수·수학교육 kpark@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