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하던 ‘끼’ 살려, 우리소리 ‘맛’에 빠지게”
공연장 밖에서는 첫 만남이었다.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내 커피숍에 들어서는 경기소리꾼 이희문 씨(34)의 모습은 회색 재킷에 스누드(넓은 머플러)와 부츠, 500원짜리 동전만 한 큰 반지까지, 딱 일본 신주쿠를 배회하는 ‘노는 청년’ 같았다.
“복장이 튄다”고 말하자 그는 웃었다. “하하∼ 국악 처음 할 때는 선생님들이 혀를 끌끌 차셨어요. 그런데 전 이게 편하거든요. 국악 한다고 꼭 두루마기 입을 필요는 없잖아요.”
○ 가수 지망생에서 뮤직비디오 제작자로
지금은 경기소리꾼이지만 오랜 가수 지망생 시절과 뮤직비디오 제작자의 길을 거쳤다. 이희문 씨가 전통에서 새로운 색깔을 끄집어내고 색다른 매력을 덧입히는 힘도 이런 특이한 이력에서 나온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늦깎이 국악인으로
국악인으로의 갈림길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경기민요 명창 이춘희 씨와 국악공연을 보다 우연히 가락을 흥얼거린 것이 이 씨의 눈에 띈 것. 이튿날 그를 부른 이 씨 앞에서 그는 ‘긴 아리랑’을 구성지게 불렀고, 이 씨는 한마디 했다. “얘, 너 아무래도 소리해야겠다.”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들었던 국악을 20대 후반에 그렇게 다시 만났다. 어릴 적부터 틈틈이 소리도 배웠기에 습득은 빨랐다. 이 씨 아래서 하루 8∼9시간씩 연습에 매달렸고, 5개월 연습 후 처음 참가한 2003년 10월 경서도 소리공연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온나라국악경연대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시작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국악은 제 팔자였나 봐요.”
그가 7월 무대에 올린 ‘황제, 희문을 듣다’는 ‘옴니버스 국악 뮤지컬’로 부를 만하다. 이 무대에서 그는 경기소리 명창이자 재담의 대가인 박춘재(1881∼1948)의 궁중 연희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냈다. 각 지역 장사꾼의 얘기를 다룬 ‘각색 처녀 장사치, 흉내’에선 사회자로 변해 여성 장사꾼들을 소개한다. “마장리 처녀를 한번 만나볼까요”라고 말하면 ‘마장리 처녀’가 나와 “사랑합니다. 고객님 어떤 미나리를 원하십니까? 봄미나리 1번 가을미나리 2번 돌미나리는 3번 나리나리 개나리는 4번 다시 들으시려면 샵버튼….” 하고 전화 안내원을 흉내 내 웃음을 유발한다. 1960년대 ‘한양합주단’의 모습은 카페에서 치근거리는 남자와 도도하게 이를 받아지는 여자의 모습을 통해 한 편의 콩트로 재현했다. 국악에 생소한 관객들도 익살스러운 장면에 자연스레 몰입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를 가르친 이춘희 씨는 “국악의 변천사를 잘 조명해 천박하거나 유치하지 않게 공연으로 이끌어 낸 점이 좋았다”고 칭찬했다.
“저는 역사 속의 재료들을 바탕으로 각색을 해 관객들의 입맛에 맞게 포장을 하는 거예요. 재미있고 신선하게 만들어 관객들이 우리 전통을 멀리하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새롭지만 전통 잃지 않는 국악 추구
대한제국기 재담의 대가이자 경기소리 명창이었던 박춘재의 궁중 연희를 오늘날에 맞게 되살린 ‘황제,희문을 듣다’. 사진 제공 경기소리 프로젝트그룹 나비
그는 경기소리 프로젝트그룹 ‘나비’를 만들어 연출가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움집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옛날 경기지역에선 농한기에 사람들이 땅을 파고 만든 움집에 소리꾼들을 불러 소리를 청했는데 이를 재현하는 무대다. 무용과 영상을 국악과 접목시키는 데도 그는 관심이 많다. “찾아보니 할 게 많아요. 전통이 좋아도 옛것만 답습하는 것은 재미가 없지요.”
이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고 있지만 그는 말한다. “저는 ‘메이저’가 되기보다는 계속 마이너로 머물고 싶어요. 이름이 알려질수록 기대도 커지고 작업에는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것저것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지금이 좋습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