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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아파트 ‘로열층’ 낮아졌다

입력 | 2010-11-01 20:28:04


서울 송파구에 사는 50대 최모 씨는 얼마 전부터 좀 더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지금 사는 23층보다 낮은 10~15층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조망권 때문에 고층을 골랐었는데 매일 승강기를 기다리다 지친다"며 "조망도 중요하지만 생활에 불편한 점이 많아서 이제 굳이 높은 층을 고집하지 않는다"라고 털어놨다.

꼭대기 층의 고급 펜트하우스와 가리는 것 없이 멀리까지 내다보이는 조망권. 흔히 이런 조건을 갖춘 초고층부를 '로얄층'으로 선호했지만 최근 중간층을 찾는 수요자가 많아지면서 '로얄층' 위치의 대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로얄층 위치 계속 바뀌어

아파트가 한참 들어서던 1970~80년대만 해도 소위 4분의 1법칙에 의해 중간층이 '로얄층'으로 불렸다. 20층 아파트라면 저층의 1~5층과 고층의 15~20을 제외한 6~14층의 인기가 많았다. 김신조 내외주건 사장은 "예전에는 기술력이 부족해 고층에는 물이 잘 안나오는 등 불편이 많았다"며 "실제 1990년대 초반 분당이나 일산신도시 아파트는 중간층이 먼저 팔렸다"고 떠올렸다.

2000년대 들어 30층 높이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들이 생겨나면서 로얄층이 최상층으로 옮겨갔다. 고층 아파트 거주가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조망권과 일조권 등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사회 분위기가 로얄층 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최근 입주하는 30층 이상 고층 아파트에는 15~20층을 원하는 수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 리체(삼호가든1, 2차 재건축 단지) 인근의 정희중 공인중개사는 "매매나 전세 고객의 10명 중 7명 정도는 중간층을 먼저 찾는다"고 말했다.

실제 수도권 지역 30층 이상 아파트 인근 중개업소 20여 곳에 확인한 결과 고층부의 분양가가 높은데도 일부 저층을 빼고는 대부분 매매가격의 차이가 없었다. 서울 송파구의 잠실 리센츠(최고 33층)는 초고층보다 10~20층이 최고 1000만 원까지 비싼 물건도 있다.

●위기상황과 불편함이 고층부 기피 원인

10월 부산 해운대구 주상복합아파트 화재가 중간층 선호를 부추기고 있다. 소방차 고가사다리가 15~20층밖에 닿지 못한다는 점이 주요 원인이다. 서울의 한 주상복합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부산 화재 이후 대피시설을 묻는 전화가 많아졌다"며 "구체적으로 꼼꼼하게 설명해야 만족한다"고 전했다.

고층부의 각종 불편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초고층 주상복합에 설치된 고층 전용 승강기가 일반 고층 아파트에는 대부분 없다. 일부 거주자들은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하고 어린이들을 둔 집은 자주 들락날락하기 어렵다며 고층을 부담스러워 한다.

또 조망권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한강이나 바닷가를 끼고 있는 일부 단지와 고층 빌딩이 집중된 지역을 제외하면 초고층의 조망이 무의미하다는 것. 정명기 일산자이위시티 분양소장은 "우리 단지는 뛰어난 조경을 보려고 중간층을 원하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9월 일산지역 아파트 입주한 박모 씨도 "청약 때는 고층이라 좋아했는데 막상 입주해보니 후회된다"며 "집에서는 하늘과 까마득히 멀리 있는 빌딩만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제 '로얄층'이 '선호층'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기업 임원 등 경제력이 있는 수요자는 여전히 고층만 찾고 노인과 아이가 있는 가정은 저층을 찾는 등 수요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김신조 사장은 "예전처럼 고층만을 선호하지 않게 된 것은 분명하다"면서 "소비자의 선호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층을 골라가는 추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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