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비바’를 제치고 칠레 최고 와인에 등극한 ‘하라스 데 피르케’
▲ ‘하라스 데 피르케’ 와이너리를 정면에서 바라 본 모습.
종마장에서 나온 거름으로 포도를 재배해 만드는 와인이 있다. 칠레 마이포 밸리에 위치한 와이너리 ‘하라스 데 피르케’(Haras de Pirque)다. 종마장 거름으로 만든다니 얘기만 들어도 말 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
▲ 창립자의 아들 에두아르도 B. 마테. 배우를 연상케 하는 외모다.
그런데 목장이 세워진 지 99년째 되던 해인 1991년, 폴로 선수 출신의 사업가 에두아르도 A. 마테가 종마장을 비롯해 600헥타르의 땅을 사들였다. 종마장 주변은 우연찮게 포도밭이 있어 폴로를 통해 말을 좋아하게 된 에두아르도 A. 마테는 말과 와인, 두 마리 토끼를 쫓기 시작했다.
▲ 칠레 최고 와인 자리에 오른 ‘엘레강스 카베르네 소비뇽’.
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8년 칠레의 가장 권위 있는 와인 가이드북 ‘데스콜챠도스’(Descorchados)는 하라스 데 피르케가 만든 ‘엘레강스 카베르네 소비뇽’(Elegance Cabernet Sauvignon) 2004년산을 칠레 최고의 와인으로 뽑았다. 담배 향과 초콜릿 향이 근사하게 코를 간질이는 엘레강스 카베르네 소비뇽은 스파이시한 풍미가 일품인 와인.
총 885개 와인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칠레-프랑스 합작 와인 ‘알마비바’(Almaviva) 2004년산과 공동 1위를 기록한 뒤 최종 오픈 테이스팅에서 당당히 알마비바마저 제치고 우승했다. 종마장 거름이 알마비바를 최고의 와인으로 만든 샤토 무통 로칠드의 마법마저 녹여버린 놀라운 사건이다.
엘레강스 카베르네 소비뇽은 라벨에도 종마의 힘이 담겨 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로 유명한 에드가 드가의 작품 ‘기수’를 담아 기수가 타고 있는 경주마가 드러난다.
▲ 와이너리 전경.
종마가 와인에서도 마법을 부리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은 와이너리 외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정면에서 보면 다른 와이너리의 외관과 크게 차이나는 것을 알 수 없지만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와이너리를 내려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와이너리 외관이 정확하게 말발굽 모양을 하고 있어서다.
▲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말발굽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모양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중력을 이용해 와이너리의 구조를 만들어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 있다면 이곳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종마와 파트너십을 함께 하고 있는거다.
에두아르도 A. 마테는 2003년 이탈리아의 와인 명가 안티노리와 조인트 벤처 협정을 체결하고 ‘안티노리&마테’사를 설립해 하이엔드 합작 와인 ‘알비스’(Albis)도 내놨다. 뿐만 아니라 국내 유명 대형 세단과 이름이 똑같은 ‘에쿠스’(Equus)와 ‘캐릭터’(Character)도 생산하고 있다. 에쿠스는 이름은 거창하지만 실상 편안한 가격대에 마실 수 있는 대중적인 와인으로 하라스 데 피르케의 엔트리 레벨이다. 하라스 데 피르케를 마시고 싶은데 주머니가 가볍다면 생각해 볼만한 고려 대상이다.
글&사진·이길상 와인전문기자(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정회원 juna109@naver.com)
사진제공·대유와인
‘섹시한 와인이 좋다’를 연재하는 이길상 기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