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들/윤성희 지음/312쪽·1만 원/문학동네
첫 장편소설 ‘구경꾼들’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가족들을 그려냄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소중함을 보여준 작가 윤성희 씨.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 아빠, 큰삼촌, 작은삼촌, 고모, 나. 한동안 유행하던 유사가족이 아니다. 이건 진짜 대가족 얘기다. 작가는 ‘나’라는 사내아이가 이 많은 가족과 더불어 자라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소년이 도드라진 주인공은 아니다. ‘나’의 성장을 지켜보고 함께하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구경꾼들에게는 자기만의 역사가 없다’는, 잘 기억나지 않는 제목의 책의 한 구절에서 작품이 시작됐는데… 그 구절과 맞는 게 아닌 거죠”라며 윤 씨는 웃는다. 작가가 ‘나’의 ‘구경꾼들’에게 그들만의 역사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가 엄마를 임신한 채 터미널 다방에 일곱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애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를 임신하고 고민하던 엄마는 옆집 아이가 피아노 치는 소리를 들은 다음에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아빠는 어렸을 적 아이스박스 안에 들어가 잠들었다가 가족을 발칵 뒤집어놓은 적이 있다. 열쇠 갖고 다닐 일이 없다는 얘길 했는데도 열쇠고리를 선물한 남자가 무심하다 여겨 헤어진 고모는 다섯 번의 이별을 겪고는 그 남자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깨닫는다. 이렇게 작가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만의 이야기를 지어주고, 잠시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연을 만들어준다.
윤성희 소설의 맛은 역시 깔끔한 유머다. ‘식구들의 예상과 달리 어머니는 할 줄 아는 음식이 많지 않았다. 어머니는 매일 콩나물국을 끓였다. 식구들은 콩나물국을 먹으면서 요리솜씨를 칭찬했던 것을 후회했다. 어머니가 친정에 간 날 식구들은 저녁을 먹으면서 가족회의를 했다. “누군가 말해야 해요. 다른 것도 먹고 싶다고.” 작은삼촌이 말했다. (…) “난 말 못 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안 그랬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에게 콩나물국을 그만 먹고 싶다고 말한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당신의 아들이 일주일 내내 같은 국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면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슬퍼할 거야. 할아버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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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이런저런 것들을 쳐다보고 그냥 어리둥절해 하는 일은 아닐까”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한 가족의 삶을, ‘쳐다보고 어리둥절해 하는’ 심정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산다는 것의 의미는, 그가 따뜻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저마다의 이야기들 가운데서 떠오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