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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배꼽잡고 웃다가 코끝이 찡…잘만든 가족 시트콤 보는듯

입력 | 2010-10-09 03:00:00

◇구경꾼들/윤성희 지음/312쪽·1만 원/문학동네




첫 장편소설 ‘구경꾼들’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가족들을 그려냄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소중함을 보여준 작가 윤성희 씨.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웃음 그리고 짠함. 윤성희 소설의 키워드는 이렇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키워드가 구닥다리던가? 얼핏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이걸 풀어내는 윤성희 씨(38)의 스타일은 재치로 넘친다. 네댓 장에 한 번꼴로 푸핫, 터지는 웃음은 뒤끝 없이 유쾌하고, 슬픔의 감정은 과하게 흘러넘치지 않아 더 오래 짠하다. 구닥다리,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 아빠, 큰삼촌, 작은삼촌, 고모, 나. 한동안 유행하던 유사가족이 아니다. 이건 진짜 대가족 얘기다. 작가는 ‘나’라는 사내아이가 이 많은 가족과 더불어 자라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소년이 도드라진 주인공은 아니다. ‘나’의 성장을 지켜보고 함께하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구경꾼들에게는 자기만의 역사가 없다’는, 잘 기억나지 않는 제목의 책의 한 구절에서 작품이 시작됐는데… 그 구절과 맞는 게 아닌 거죠”라며 윤 씨는 웃는다. 작가가 ‘나’의 ‘구경꾼들’에게 그들만의 역사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가 엄마를 임신한 채 터미널 다방에 일곱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애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를 임신하고 고민하던 엄마는 옆집 아이가 피아노 치는 소리를 들은 다음에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아빠는 어렸을 적 아이스박스 안에 들어가 잠들었다가 가족을 발칵 뒤집어놓은 적이 있다. 열쇠 갖고 다닐 일이 없다는 얘길 했는데도 열쇠고리를 선물한 남자가 무심하다 여겨 헤어진 고모는 다섯 번의 이별을 겪고는 그 남자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깨닫는다. 이렇게 작가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만의 이야기를 지어주고, 잠시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연을 만들어준다.

윤성희 소설의 맛은 역시 깔끔한 유머다. ‘식구들의 예상과 달리 어머니는 할 줄 아는 음식이 많지 않았다. 어머니는 매일 콩나물국을 끓였다. 식구들은 콩나물국을 먹으면서 요리솜씨를 칭찬했던 것을 후회했다. 어머니가 친정에 간 날 식구들은 저녁을 먹으면서 가족회의를 했다. “누군가 말해야 해요. 다른 것도 먹고 싶다고.” 작은삼촌이 말했다. (…) “난 말 못 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안 그랬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에게 콩나물국을 그만 먹고 싶다고 말한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당신의 아들이 일주일 내내 같은 국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면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슬퍼할 거야. 할아버지는 생각했다.’

웰메이드 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 물론 화면이 줄 수 없는, 문장만이 줄 수 있는 웃음이다. 책을 읽다 보면 심각하게 가족 회의하는 장면이 절로 떠오르고, 짐짓 고심하는 가족의 목소리들이 행간에서 들리는 것 같은, 온갖 감각이 자극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무심한 듯 쓰인 문장들 곳곳에서 웃음이 퍽, 퍽 터져 나온다. 코에 열이 오르도록 웃다가 그 열기가 시큰하게 바뀌는 것을 깨닫는다. 살 맞댄 가족의 죽음에 남은 이들은 상처를 극복해야 하며, 이 가운데 어렸던 소년 또한 성장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차분하게, 따스하게 묘사한다. 가족들은 저마다에게 일어나는 새로운 사건들을 서로 나누면서, 그들의 삶에 들어온 사람들과 섞이면서 슬픔을 돌파해 나간다.

“삶이란 이런저런 것들을 쳐다보고 그냥 어리둥절해 하는 일은 아닐까”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한 가족의 삶을, ‘쳐다보고 어리둥절해 하는’ 심정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산다는 것의 의미는, 그가 따뜻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저마다의 이야기들 가운데서 떠오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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