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닌 마음의 나눔
부자란 통장에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을 넣어 둔 이가 아니다. 부자는 늘 베풀 것이 있는 사람이다. 돈이 있으면서 베풀지 않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인색한 사람이고 명품으로 휘감고 다니면서 베풀 줄 모르는 사람도 부자가 아니라 자아도취적인 이기적 사람이다. 인색할수록 낙천적이지 못하고 자아도취적일수록 자존감이 낮다고 하지 않는가.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나눌 수 없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다. 언제나 마음이 비밀이다. 풍요로울 때는 세상 전체를 품다가도 인색할 때는 바늘 꽂을 자리 하나 없는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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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은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사람을 감동시키는 모든 생각은 머리 굴리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몸에서, 삶에서 온다. 정부가 나눔을 진짜 아름다운 힘이라고 생각했다면 청문회에서 선거 때 도움을 줬던 사람, 권력에 보초나 설 사람이 아닌 나눔의 힘으로 살아온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의 핵심부에 흐뭇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상주한다면 온기가 자연스레 흐르지 않겠는가. 그것이 나눔의 진정성이다.
세계적인 부자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모여 기부문화의 확산을 이야기할 때 따뜻한 시선을 보내게 되는 것은 돈의 액수 때문이 아니라 자발성 때문이었다. 그렇게 많이 모았으니 베푸는 게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모으면 모을수록 2% 부족하다고, 그러니 조금 더 모아야 한다고 재촉하는 것이 돈의 속성이다. 알지 않는가. 월급에서 1%를 떼어 좋은 일에 쓰자고 할 때 그 1%는 너무나도 크지만 나머지 99%의 월급은 언제나 쥐꼬리처럼 느끼는 이치를.
많이 벌어야만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나는 평생 나누지 못한다. 우리가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의 돈 돈 돈 소리에 자존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꼭 돈으로만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시간을 나눌 수도 있고, 시선을 나눌 수도 있고, 생각을 나눌 수도 있고, 마음을 나눌 수도 있다.
세상의 그늘 향한 교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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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푼 두 푼 모은 돈은 돈이 아니라 생인데 그것을 전혀 관계없는 줄 알았던 세상의 그늘을 위해 쓰는 사람의 생은 따뜻하다. 거기선 영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교감이 일어난다. 주는 쪽은 주면서 받고, 받는 쪽은 받으면서 주는, 그런 교감! 그런 교감엔 초라한 게 없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