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직전 개봉하는 ‘퀴즈왕’(위)과 ‘그랑프리’는 한국영화에서 잘 다루지 않던 TV퀴즈쇼와 경마를 소재로 삼았다. 하지만 소재만큼 신선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데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사진 제공 이노기획 영화인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지난해 TV 드라마 ‘아이리스’로 주가를 올린 김태희 주연의 ‘그랑프리’다. 경마(競馬)라는 독특한 소재, 3월 제대한 양동근의 컴백작이라는 사실도 관심을 모았다. 7일 언론시사로 공개된 결과물의 만듦새는 한국영화 스토리텔링의 퇴보가 우려될 만큼 조악하다.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난 청춘 남녀가 느닷없이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두 남녀의 보호자들 역시 오래전 한 맺힌 이별을 나눈 연인 사이였다는 시대착오적 스토리. 달콤한 선율에 ‘우연히 만나 뜨겁게 사랑한 연인’의 모습을 천편일률적으로 담아냈던 1990년대 대중음악 뮤직비디오를 1시간 49분 동안 반복 재생하는 느낌이다. 베테랑 배우 박근형 고두심이 “아니, 당신은…!” “그것은 내 못난 죄책감이오!”처럼 닭살 돋는 대사를 진지한 얼굴로 토해내는 모습은 안타까움마저 안긴다.
장진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퀴즈왕’도 김수로 한재석 등 무더기 주연배우 12명의 팀플레이 덕에 독특한 맛을 낼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스크린 속 배우들은 러닝타임 2시간 내내 즐거워 보인다. 문제는 산만하게 쪼개진 이야기가 스크린 밖 관객과 배우들을 자꾸 갈라놓는다는 점이다. 영화관에 앉아 대학로 연극을 보는 듯한 신선한 감흥은 10여 분을 넘기지 못한다. 장면마다 적잖은 웃음이 터지지만 그 폭소들은 이야기의 축에 힘을 싣지 못한 채 조각조각 흩어진다. ‘간첩 리철진’ ‘아는 여자’에서 보여줬던 이야기꾼의 솜씨가 아쉽다.
외국영화로 눈을 돌려도 별 대안이 없다. ‘레지던트 이블 4’는 2007년 3편에서 ‘인류의 멸망’을 선언했던 것이 무색하게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나왔다. 3차원(3D) 입체영상 효과도 적어 고글을 쓰고 보나 벗고 보나 별 차이가 없다. 유일한 애니메이션 ‘슈퍼배드’는 위악적 성격의 주인공이 순수한 동심 덕에 행복을 찾는다는 익숙한 이야기를 다뤘다. 120여 년 전 오스카 와일드가 쓴 같은 내용의 동화 ‘욕심쟁이 거인’보다 아기자기한 맛이 떨어진다.
광고 로드중
영화제작사 유니코리아 박민정 이사는 “콘텐츠 공급자 입장에서 ‘대목’은 극장에 대박 영화가 많이 나오는 시기가 아니라 소비자인 관객이 많이 나오는 시기”라며 “품질과 흥행에 자신 있는 작품은 오히려 경쟁을 피해서 비수기에 개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영화 ‘그랑프리’ 인터뷰
광고 로드중
영화 ‘그랑프리’ 뮤직비디오
▲영화 ‘퀴즈왕’ 예고편
영화 ‘퀴즈왕’ NG모음
영화 ‘퀴즈왕’ 장진감독 폭로영상
영화 ‘퀴즈왕’ 코믹영상
▲영화 ‘레지던트 이블4’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