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 단맛 매운맛 감칠맛… 인생의 희노애락 버무려 일본산 압도적인 가운데… 한국산 2002년 식객 대표적요리문화 관심 크게 높여… 동호회 블로거 활동 활발
평범한 음식 속에 숨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조주희 작가의 만화 ‘키친’의 한 장면. 오이소박이에 엄마의 수십년 세월이 담겨 있고, 바지락칼국수에선 바닷가에서의 한 나절이피어오른다. 음식이란 그런 거다. 사진 제공 서울문화사
한국에서는 2002년 첫 선을 보인 ‘식객’이 대표적이다. 식객이 붐을 일으키면서 만화에 등장하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식도락 동호회, 만화 속 조리법을 따라해 보는 요리 블로거가 등장했다. 바나나우유, 단팥빵, 굴 등을 각각 에피소드로 그린 조주희 작가의 ‘키친’, 중화요리를 다룬 조경규 작가의 ‘차이니즈 봉봉 클럽’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먹을거리의 소중함,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요리하는 이의 정성, 함께 나눠 먹는 즐거움. 음식만화를 관류하는 공통점이다. 그래서 음식만화에는 온기가 있다. 선선한 바람을 기다리는 요즘, 책갈피마다 향기가 피어오르는 맛있는 음식만화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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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은 지난해 일본 TBS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음식감독을 맡은 이이지마 나미 씨가 이 드라마에도 참여했다. 이 만화를 번역, 출간하는 대원씨아이의 곽혜은 기자는 “만화책을 안 보던 분들이 많이 찾는 만화”라면서 “심야식당의 독특한 감성이 어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키친’은 지난해 1권이 나온 이래 최근 3권까지 출간됐다. 작가는 음식만큼이나 음식에 얽힌 사람들의 삶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된장찌개에서는 하늘나라로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의 애잔한 마음을,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찾아든 장례식장에선 육개장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이 만화는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사이트(www.homeplusstory.com)에서 연재되고 있다. 출판사 측은 “독자 소감 가운데 ‘음식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내용이 가장 많다”면서 “특히 주부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 진심어린 마음이 그리울 때-맛의 달인, 어시장 삼대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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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는 식(食)의 근본, 인간과 음식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지로는 도박에 빠진 요리사와 볶음밥 만들기 대결을 펼친다. 사치스러운 재료를 듬뿍 사용한 요리사보다 지로의 평범한 볶음밥이 맛있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손님들. 지로는 요리사에게 말한다. “이것저것 사치스러운 재료를 써서 사치스러운 맛을 보는 건 다른 요리로 충분해. 볶음밥의 맛이란 쌀밥의 맛이야. 밥맛을 맛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지. 목적에 어긋나는 것을 만든 것 자체가, 당신의 감이 어긋나 있다는 증거야.”
○ 요리하고 싶어질 때-어제 뭐 먹었어?
‘집밥’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어제 뭐 먹었어?’가 좋겠다. ‘서양골동양과자점’의 작가 요시나가 후미의 최신작이다. 주인공은 슈퍼마켓의 세일 상품만 노리고 동네 아주머니와 수박 한 통을 반씩 나눠서 사는 40대 짠돌이 게이 변호사 카케이 시로다. 같이 사는 미용사 파트너를 위해 알뜰살뜰 구입한 식 재료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이용해 따끈한 밥상을 뚝딱 차려낸다. 슈퍼마켓을 돌며 직접 재료를 고르고 다듬어 누군가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일이 얼마나 포근한 일인지 살짝 맛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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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정식 위주라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채소가 나오지만, 우리네 재료로 대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간단한 레시피들이다. 또 초밥 한 입 먹고 ‘파도가 입 안으로 몰려온다’는 둥 온갖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하는 호들갑이 없다. 카케이 변호사의 한 마디. “요리할 땐 잡생각이 안 들잖아요? 그래서 난 심난한 일이 있어도 밥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져요.”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