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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유전자 정보 사세요” 솔깃한 유혹

입력 | 2010-08-09 03:00:00

‘과학적 체질분석’ vs ‘열등인간 낙인찍기’ 개인 게놈진단 논란 확산




#1 1997년 개봉한 영화 ‘가타카’는 유전자 정보로 질병 가능성뿐만 아니라 키, 수명 등 모든 것을 분석해 우성, 열성으로 판단하는 사회가 배경이다. 유전자 분석 결과 ‘폭력적이고 머리가 나쁘며 31세에 죽을 운명’이었던 주인공은 자신의 꿈인 우주 비행사가 되기 위해 우성 유전자를 가진 다른 사람의 검사 결과를 사들였다.



#2 한국인 홍모 씨는 지난해 미국 개인유전자 검사업체인 ‘23andMe’에서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검사 결과 심혈관질병 계통에 대한 위험도가 높다는 결과를 받았다”며 “지능지수(IQ)와 기억력은 평균 이상, 키는 평균보다 0.4cm 작다는 분석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영화적 상상력이 10여 년 만에 현실이 됐다. 생명공학기술(BT)이 발달하면서 최근 특정 질병에 취약한지에서부터 성격, 외모 등 유전자에 포함된 개인의 모든 정보를 파악하는 ‘개인 유전자 분석’이 화제가 되고 있다. 심지어 한 케이블TV 채널에서는 연예인을 출연시켜 유전자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 프로그램까지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많게는 수천만 원이 드는 검사 비용을 부담하고서라도 분석을 받아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반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대중을 호도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 한국에선 아직 불법이지만…

TV 프로그램에서 유전자 분석을 해 준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 관계자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검사를 받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연구소 측은 “현행법상 상업적인 유전자 검사는 불법에 가까워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질병 관련 유전자 검사를 의료기관에서 직접 하거나 의뢰를 받은 기관에서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연구소 측은 “연예인들의 검사 결과는 모두 연구 목적으로 활용된다”며 “방송은 연예인들이 검사 결과 공개에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인 유전자 검사를 해주는 해외 업체에 의뢰하면 얼마든지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동아일보가 ‘23andMe’ 등 미국 주요 유전자 검사 회사에 직접 문의한 결과 “한국인도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만 이 회사들이 한국으로 검사 키트(타액을 담는 용기와 이 용기를 회사로 발송하는 택배 봉투로 구성)를 발송하지는 않고 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미국에 사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검사 키트를 국제소포로 받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검사료는 검사 항목에 따라 400달러에서 수천 달러다.

○ “검증 안 된 내용으로 낙인”

김종원 삼성의료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질병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2만3000여 개 유전체 중 의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3000개 정도에 불과하다”며 “나머지는 지금까지 축적된 유전자 정보를 통계적으로 활용해 ‘A 질병에 많이 걸리는 사람에게 B 유전자가 많이 발견됐다’ 정도의 확률 정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검사 결과가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10월 과학 전문 주간지인 ‘네이처’에는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유전자검사 업체마다 다른 분석을 하고 있다”는 미국 유력 유전자 연구기관인 J 크레이그벤터 연구소의 존 크레이그 벤터 소장의 기고가 실렸다. 벤터 소장은 “5명의 유전자를 ‘23andMe’와 ‘Navigenics’에 동시에 분석 의뢰한 결과 일부 질병에 대해 전혀 다른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심장병, 낭창(결핵성 피부병의 일종) 등에 대한 발병 위험 검사에서 5명 중 3명에 대해 상반된 결과를 냈다.

유전자 검사로 질병 정보를 알게 되더라도 현재까지는 아무런 극복 방법이 없기 때문에 상용화나 검사 결과 공개는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있다. 이유경 순천향대 부천병원 진단검사학과장은 “의학적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질병을 유전자 검사로 진단한다고 해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까지 없다”며 “사회적 파장만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 “법에 묶이면 기술 뒤진다”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는 “외모나 성격 등에 관련한 검사는 인간의 우열을 유전자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윤리적”이라며 “그러나 질병 부분은 의학 발전과 사회적 공익이 더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사 결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부분이란 주장에는 “국내외 학계에서 새로 발표되는 논문 수십 편을 매일 분석해 그중 연구기관이나 병원 등에서 의미가 있다고 인정하는 부분들을 연구와 검사에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은 이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를 축적하기 시작한 반면 상업화가 허용된 미국에서는 23andMe 같은 민간 회사가 5만여 명의 DB를 가지고 있다. 유전자 DB는 개인 게놈 분석의 핵심이기 때문에 한국도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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