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 들어가는 것보다 속도도 느리고 부상위험도 높다는 1루 슬라이딩. 그렇다면 프로야구 선수들은 왜 1루에 슬라이딩을 하는 걸까?
간발의 차로 결정나는 1루의 승부. 분명 뛰어 들어가는 게 빠르다고 하는데, 슬라이딩을 하는 타자주자도 종종 볼 수 있다. 과연 1루 슬라이딩은 실제적으로든, 시각적으로든 더 빠를까?
● 원론적으로 1루 슬라이딩이 더 느려…그래도 마음이 앞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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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심판의 입장은 다르다. 문승훈(44) 심판은 “서서 가다가 몸을 숙여야 하니 당연히 스피드가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걸음이 느린 선수들의 감속률은 더 크다. 문 심판은 “장기영이나 이대형(27·LG) 같이 빠른 선수는 슬라이딩도 날카롭지만, 다른 선수들은 땅에 걸려서 들어오는 게 눈에 다 보인다. 살짝 ‘왜 슬라이딩을 했냐?’고 귀띔할 때도 있다”며 웃었다.
‘뛰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단거리육상전문가들의 증언도 일치한다. 한때 100m한국기록을 보유했고, 84∼86년 롯데 트레이닝 코치로 활약한 서말구(55) 씨는 “달리는 동작에서 조금의 신체균형변화도 감속요소다. 육상단거리에서도 탄력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오는 러닝피니시가 강조되는 추세다. 슬라이딩을 하면, 균형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예외도 존재, 슬라이딩이 더 빠른 3가지 상황
물론, 예외는 있다. 장기영처럼 “다들 슬라이딩이 느리다고 하지만, ‘어떤 때’는 그게 더 빠른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선수도 있다. 그 ‘어떤 때’는 3가지 상황으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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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1루 송구가 좋지 않아 1루수의 발이 베이스에서 떨어질 때. 타자주자가 슬라이딩으로 몸을 낮추는 편이 1루수의 태그를 피하기 쉽다.
세 번째는 1루 베이스를 밟는 마지막 스텝에서 점프를 길게 하는 ‘잘못된’ 습관을 가진 경우. 공중에 뜨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자연히 더뎌진다.
LG 유지현(39) 작전주루코치 역시 “마지막에 속도가 줄어드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에 꼭 스피드 문제 때문에 슬라이딩을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나 같은 경우 이유는 딱 하나. 부상 위험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1루 슬라이딩을 하다가 다쳐 자유계약(FA) 자격이 1년 뒤로 미뤄지는 악몽을 경험한 선수도 있었다.
● 슬라이딩 또는 쇼트트랙식 ‘발 들이밀기’보다는 육상 ‘런지피니지’가 시각적으로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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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은 공이 1루수 미트에 들어오는 순간과 타자 주자가 1루 베이스를 밟는 순간을 동시에 살펴 아웃·세이프를 ‘감각적으로’ 판단한다. 보통 야수의 송구는 1루수의 상체(가슴) 쪽을 향한다. 이 때 심판은 타자주자의 움직임까지 한 시야 안에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타자주자가 같은 타이밍에 1루 베이스를 밟았다고 하더라도, 상체(가슴)가 뒤로 빠진 상태보다 상체를 앞으로 숙인 상태가 더 빨라 보일 수 있다.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에서 스케이트 날이 먼저 들어온 선수도 시각적으로 늦어 보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1루에서는 쇼트트랙의 ‘날 들이밀기’가 아니라, 육상단거리에서 런지피니시(lunge finish·가슴을 뻗는 동작)가 유리하다.
반면 타자주자가 슬라이딩을 한다면, 심판의 시선이 ‘위와 아래로’ 분산돼 정확한 판단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김 코치는 “1루에서 슬라이딩을 하거나 발을 쭉 내밀지 말고, 상체가 1루 베이스 위를 통과한다는 느낌으로 들어오라고 강조한다”고 했다.
심판들은 또 다른 애로 사항도 호소한다. 문승훈 심판은 “대구나 사직처럼 잔 흙이 많은 구장에서는 슬라이딩을 할 때 흙먼지가 많이 나 시야 확보에 어려운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