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베 강에서 리버사파리를 마친 보트가 카사네(보츠와나)의 나루터로 돌아오고 있다. 붉게 물든 서편 하늘 아래로 펼쳐진 강건너 땅은 나미비아다. 이 물은 잠베지강에 유입돼 빅토리아폭포에서 추락한다.
이 답을 찾은 지는 불과 50여 년. 1924년 처음 발굴한 ‘큰 유인원’(Great Apes·인류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로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이라 불린 고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 화석 연구를 통해서다. 이 유인원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했고 이런 환경적응 능력을 바탕으로 사바나를 벗어나 아프리카 대륙의 열대와 아열대 지역까지 진출했다. 그 후로는 유럽 남부와 아시아 동남부로 퍼져나갔다. 그 시기는 대략 400만∼150만 년 전. 런던대 롤랜드 올리버 교수(아프리카사학과)가 ‘우리 모두는 아프리카에서 왔을 것이다’라고 한 말도 그런 과학적 연구에 기초한 것이다.
그 아프리카, 거기서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 화석이 최초로 발견된 남아공에서 월드컵이 한창이다. 68억 인류가 펼치는 축구잔치가 현생인류의 조상이 태어난 곳에서 열리고 있음을 알고 즐긴다면 이 축제가 더더욱 즐겁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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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 왕국, 초베 국립공원을 향해
이 지역은 1만 년 전부터 살아온 부시맨 ‘산(San)’족의 땅. 하지만 여행객에게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코끼리가 가장 많은(5만 마리), 그래서 코끼리 사파리의 최적지로 더 잘 알려졌다. 20년 전만 해도 개체수가 수천 마리에 그쳤다니 그간의 보호활동이 큰 성과를 거둔 셈이다. 이곳 종(種)은 몸집이 큰 반면에 코는 짧은 칼라하리 코끼리다. 건기(5∼10월)면 어김없이 초베 강과 리니야티 강 늪지대로 몰리는데, 그래서 지금부터가 초베 국립공원의 사파리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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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베 강의 리버 사파리
폭 1708m로 세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빅토리아폭포를 짐바브웨 쪽에서 바라본 모습. 깊이 108m협곡의 폭포가 일으켜낸 물보라로 폭포 동편에 무지개가 걸렸다.(위 사진) 초베 강 리버 사파리에 나선 보트 한 척이 수중에서 먹이활동 중인 하마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건기를 맞은 요즘 초베 국립공원은 마르지 않는 물(초베 강)을 찾아 이동해온 코끼리 등 동물들로 그 어느때보다 활기가 넘친다.(아래 사진)
트러킹 투어 일행도 리버 사파리를 위해 강변 나루터를 찾았다. 카사네의 초베 강은 폭이 수백 m에 이를 정도로 넓다. 당시는 물이 강 양안까지 모두 채웠다. 하지만 건기면 강상이 드러나며 몇 줄기 작은 물길만 남는다. 이 강은 트러킹 투어의 최종 목적지인 빅토리아폭포의 원류, 잠베지 강으로 흘러들어 폭포에서 추락한다.
오후 4시 반. 바지선 형태의 유람선은 천천히 강 안을 오르내리며 동물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물속에는 하마 수십 마리가 떼를 이뤄 먹이활동 중이었다. 거대한 하마는 대부분 시간을 잠수하며 수중의 수초를 뜯는다. 가끔 숨을 고르기 위해 수면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콧구멍과 눈, 귀밖에는 볼 수 없을 만큼 노출을 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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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강 건너 나미비아 땅의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나루터로 귀환하는 보트 위 여행자 모두가 동편 하늘을 진홍빛으로 물들이는 저녁노을에 매료돼 말을 잃었다. 오버랜드 트러킹은 이렇듯 매일 기대치 않았던 멋진 해넘이로 언제나 나를 감동시켰다.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감동이 컸음은 말할 것도 없고.
○ 리빙스턴과 빅토리아
여행 19일째. 오버랜드 트럭은 오전 10시, 80km 밖 빅토리아폭포를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도중 카사네 타운에서 특별한 체험을 했다. 폭포에서 하늘로 솟구친 거대한 물안개를 본 것이다. 위키피디아(인터넷 백과사전)의 설명대로라면 50km 거리가 한계인데 그날은 이곳에서도 관측됐다. 며칠 전 초베 강 상류의 호우로 인한 수량 증가 덕분이었다. 물안개가 오르는 높이는 보통 지상 400m. 그래서 멀리 지나는 비행기상에서도 이 물안개는 확인된다.
짐바브웨 국경 통과에는 40분이나 걸렸다. 미화 30달러씩이나 하는 수속료를 내느라 길게 선 줄 때문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행선지, 빅토리아폭포가 있는 빅토리아폴스(타운)의 숙소, 사바나 로지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친 후 우비를 챙겨 폭포로 향했다.
빅토리아폴스는 13년 전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흙길에 먼지 풀풀 날리는 소박한 동네였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말끔하게 단장된 관광 타운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보기엔 좋았지만 상업화된 느낌이 강해 실망스럽기도 했다. 폭포 매표소 건너편 주차장에는 비옷 대여가 성업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이 폭포를 보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공원에 들어서면 폭포를 마주한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로가 있어 그 길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걸어가며 감상한다. 이곳은 짐바브웨지만 강 건너 잠비아 쪽에서도 폭포를 볼 수 있다.
내가 찾은 시기는 우기였던 4월. 그날은 내게 ‘감상’이 아니라 ‘투쟁’이었다. ‘물안개’가 아니라 폭우처럼 퍼붓던 물보라 때문이다. 게다가 협곡 아래서 고속으로 상승하는 강풍까지 동반한 뗏장 소낙비였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아프리카의 거친 숨결을 오롯이 즐길 수 있어서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폭포(기준은 폭)에서 가차 없이 쏟아져 내리는 엄청난 양의 강물, 거기서 울려 퍼지는 굉음과 강풍, 사정없이 퍼붓는 소낙비 세례 속에서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폭포의 원래 이름을 알면 이런 내 느낌을 좀 더 짙게 공감할 수 있다. 그것은 ‘모시 오아 투니아’, ‘천둥소리 내는 물안개’란 뜻이다. 폭포 서쪽 끝에 가면 동상이 있다. 서양인으로 이 폭포를 처음 본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1873·스코틀랜드)이다. 동상 기단부에 이런 글귀가 있다. ‘교화, 통상 그리고 문명(Christianity, Commerce and Civilization).’ 기독교 선교사로서, 영국의 통상루트 개척을 위한 탐험대장, 그리고 문명론자로서 아프리카 탐험에 도전한 그의 평생 모토였다. 그는 잠베지 강 탐험에 이어 나일 강 원류 탐험에 도전했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아프리카 오지마을에서 숨진다. 그리고 시신은 런던에 옮겨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됐다. 하지만 그의 심장만은 숨진 부락의 나무 아래 묻혔다. 임종을 지켰던 부락추장의 방식이었다. 그 추장은 시신을 내주며 이런 글을 써주었다. ‘시신은 가져가도 좋지만 그의 심장만은 아프리카 것이다’라고.
○ 여행정보
글·사진 보츠와나·짐바브웨=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