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km DMZ 속살 기록한 최병관 씨눈덮인 철책선 찍기 위해 석 달간 같은 장소에 오자軍, 월북의심 보고서 올려
사진작가 최병관 씨가 DMZ의 모습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이 장면을 찍으려고 같은 장소를 3개월 동안 오갔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이렇게 적은 뒤 도장을 찍었다. 사진작가 최병관 씨(60)는 자필유서를 옆에 있던 김모 중령에게 건넸다. 1997년 11월 7일, 강원 양구군 백두회관에서였다.
최 씨는 DMZ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달라는 부탁을 육군본부로부터 한 해 전에 받았다. 당시 육군 인사참모부장이던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이 “엄연한 역사인 휴전선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며 아이디어를 냈다.
눈 덮인 철책선의 장관 병사들에게 겨울은 눈과의 전쟁을 치르는 시기다. 철책을 감싼 눈꽃이 파란 밤하늘과 어울려 동화 같은 풍경을 만들었다. 얼차려를 받던 신병의 눈에 제대로 들어올리는 없었겠지만….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야생화를 발견했을 때 최 씨가 홀린 듯 꽃밭으로 들어갔다. 미확인 지뢰밭임을 알리는 수신호를 보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자 장병이 제지했다. 한걸음만 더 내디뎠으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DMZ에서 가장 높은 가칠봉에서 철책선 절벽을 타고 내려가다가 2m 높이의 눈 속에 빠져 질식할 뻔한 적도 있다.
여자친구 편지도 뜯지 못한 채 밤샘 경계근무를 선 뒤 내무반에 들어온 순간, 빨간 편지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여자친구가 보낸 편지. 몰래 읽어보리라. 설레는 마음도 지친 몸을 이기진 못했다.
숱한 젊음을 앗아간 DMZ는 사람만 빼고 동식물에게 완전한 자유와 평화를 허락한 곳이었다. 최 씨는 DMZ를 지배하는 자연이 가장 완벽한 색깔과 장면을 허락해줄 때까지 같은 장소에서 끊임없이 셔터를 눌렀다.
무명용사 고이 잠들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무명용사비 위령비 순직비가 작가를 맞았다. ‘제임스 E 오메리 상병을 기억하기 위해’ ‘무명용사의 묘’ ‘고 김상국 병장 전우 여기 고이 잠들다’….
그는 DMZ에서 철책선 경계를 서기 전에 선임 병사가 낭독하는 짧은 다짐을 지금도 기억한다. DMZ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담은 말이라 항상 되새긴다고 했다.
“분단의 고통 속에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지나온 반세기, 오늘도 어김없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그날이 돌아오길 기원합니다. 이 땅에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경계근무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이상.”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