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투자가 A씨 “외국인 자금 빠져나가는데 어떻게 보나”권혁세 부위원장 “증시만 그렇지 채권시장엔 돈 들어온다”
금융위-금감원-한은-외교부 사상 첫 공동 설명회
“김정일 죽으면 후계는?” 묻자
“누가 알겠느냐” 재치있게 답변
“신용등급 영향은?” 질문엔
“지금보다 더 올라가야 한다”
27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위원회 12층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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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세 금융위 부위원장이 조심스럽게 마이크에 입을 댔다. “주식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은 맞지만 채권시장에는 돈이 들어오고 있다. 한국 채권에 돈이 몰리는 것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외국 자본이 대규모로 빠져나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논리정연한 답변에 상대방은 수긍하는 듯 말이 없었다. 옆에 있던 이정호 금융위 외신대변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금융위는 이날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외교통상부와 함께 해외 투자자들을 상대로 긴급 전화회의(텔레콘퍼런스)를 열었다. 한국 경제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려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이후 불안해하는 외국인을 안심시키려는 취지였다. 금융위 회의실에는 권 부위원장과 이장영 금감원 부원장, 안병찬 한은 국제국장, 위성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자리를 잡았다. 이 외신대변인은 “외국인 투자가를 대상으로 정부 부처가 합동으로 연 사상 최초의 텔레콘퍼런스”라고 밝혔다.
외국인들은 남북한의 긴장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싱가포르의 한 투자자는 “천안함 사태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이 부원장은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렸지만 S&P는 아직 외환위기 전보다 2등급 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스라엘과 같은 등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신용등급은 오히려 더 올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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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위 본부장이 나섰다. 그는 “한국에서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평화적,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일이 사망하면 누가 정권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느냐’는 민감한 질문에는 “누가 알겠느냐”고 웃으며 받아넘겼다.
한 투자자는 외화유동성이 악화될 가능성을 거론하며 한은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물었다. 안 국장은 “필요하면 외화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고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에 나서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부위원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한국의 현재 상황을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라며 25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렉스칼럼’을 인용했다. ‘원화 약세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수출기업들의 실적을 뒷받침할 것이며 무역금지 조치에도 개성공단은 제외됐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대목이었다.
렉스칼럼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8월 ‘1997년으로 되돌리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은 외환위기 때와 유사한 상황”이라고 주장해 정부와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을 퍼뜨리던 FT조차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 만큼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믿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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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은도 이날 국내외 투자은행(IB)들과 정례 간담회를 갖겠다고 밝혔다. 28일을 시작으로 매 분기 간담회를 갖고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