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의 천국’이라는 비난에 스위스의 철옹성 비밀주의도 흔들리고 있다. 1990년대에는 법원의 범죄행위 판결이 있는 경우 예금자 신원을 공개했다.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는 2008년 미국의 압력에 탈세 혐의가 있는 미국 고객의 계좌정보를 미 국세청에 제공했다. 작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세피난처 국가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박하자 스위스 정부는 은행법을 OECD 기준에 맞추기로 했다.
▷현재 한국과 스위스의 조세조약에는 정보교환 조항이 없다. 양국 일정대로 7월에 조세조약을 개정하면 내년 초에야 일부 정보를 받아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여건에서 국세청이 탈세혐의자 A 씨가 스위스 홍콩 싱가포르에 개설한 14개 계좌의 거래명세를 손에 넣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10여 년 전 미국에서 번 돈으로 서울에서 제조업체를 운영 중인 A 씨의 해외계좌 입금 총액은 5억 달러, 작년 말 잔액은 1억3000만 달러였다. A 씨는 4000억 원 이상을 외국으로 빼돌린 혐의로 종합소득세 등 2137억 원을 추징당했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